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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기적이어도 돼요

자식의 부모화

by Slowlifer

최근 심리상담에서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잦은

빈도로 일상에서 흔들리는 요즘 나를 지탱해 준다.


“좀 이기적이어도 돼요.”


나 같은 증상을 칭하는 공식적인 표현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자식의 부모화’


자식을 낳고 보니 더 잔인하게만 느껴지는 표현이다. 자식은 자식이어야지 왜 자식이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 그 어리고 여린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선생님의 말처럼 자기 자신의 입장에선 잘 안 보이는데 제삼자가 되어 남의 일이라 생각하니 그 어린 내가 너무나 가엽고 안쓰럽다.


나는 마음이 아픈 일이 있어도 부모에게 “나 힘들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못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사실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싫어요, 힘들어요.

즉 나는 ‘거절하는 법’을 모르는 어른으로 자랐다.


어린 시절의 의젓한 어린이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성숙한 성인이라면 자기감정 정도는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기대는 법을 몰랐다.

특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도 된다는 걸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길을 잃었다는

걸.


그리고 지금은 생각한다.


어린이는 의젓할 의무가 없으며 성숙한 어른이라는 것 또한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일 뿐, 내 정신 건강한 게 의젓한 어린이가 되는 것보다, 성숙한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보다 백번 천 번 낫다고.


상담이 거듭될수록 생각보다 나의 상처가 깊다는 걸 느낀다. 무슨 이야기로 시작하건 결론은 부모에게로, 부모 얘기가 나오면 나의 얼굴은 늘 눈물 콧물 범벅이 된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내 안에 있는 이 감정은 ‘화’였다는 것을.


나는 지금 엄마 아빠에게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걸. 화가 많이 나 있는데도 ‘자식의 도리’라는 의무감에 여전히 스스로에게 잔인하리만큼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부모는 ‘돌봐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습관이 되어 여전히 내 감정은 묻어둔 채 나보다 부모를 먼저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 나에게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나의 숨통을 틔워주는 느낌이었다. 나만 생각해도 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좀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여태 듣고 싶었던 말이 고작 그 말이었나 허무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기에 몰랐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해줘야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애썼다고.

내가 지금 아픈 건 당연한 거라고.

그만했으면 되었다고.

부모의 인생 또한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거라고.

내가 그 감정 다 떠안을 필요 없다고.


진짜 성숙한 어른은 그 누구보다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가 살아야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다는 사실이 이제야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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