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내가 제일 소중해

템플스테이

by Slowlifer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세 가지를 적어 보라고 했다.


1.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

2. 나 자신에게 떳떳한 마음과 자신감

3. 아기와 함께하는 순간순간들


세 가지 중 하나를 꼭 지워야 한다면 뭘 지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지워보라고 했다.


처음부터 가장 소중한 세 가지를 적었기에 어느 하나 마음에서 지울 수 없어 꼭 진짜 당장 그것들이 사라질 것처럼 몇 번이나 펜을 들었다 놓았다 망설였다.


망설임끝에 1번을 지웠다.

가족들과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나는 나와 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남은 두 개 중에 하나를 또 지우고 하나만 남겨야 한다고 했다. 나와 아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역시 뭐 하나 지울 수가 없었다. 나를 선택하면 이기적인 엄마가 될 것 같고 아기를 선택하면 힘들게 되찾아온 나를 다시 버리는 것만 같았다.


숨을 한번 크게 내뱉고 3번 아기와의 순간들을 지웠다.

이 선택은 마치 앞으로 내 삶에 대한 다짐과도 같았다.


상상만으로 마음이 찢어질듯 아렸다.


하지만 결국 내게는 마지막으로 가장 소중한 한 가지.

나 자신만이 남았다.


이어진 마지막 질문.

“남은 한 가지마저 지울 수 있겠어요?”

나 자신조차도 지우라는 말이었고, 생각만으로 마음이 저릿저릿 기분이 이상했다.


무상.

결국은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는 진리.


아무리 소중한 것들이라도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하에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이 명상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많은걸 내려놓았다 생각했음에도 다시 한번 여전히 내 마음에 적지 않은 욕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가족과의 시간, 아기와의 행복한 순간, 온전한 나로서의 당당함. 어느 하나 놓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모두 놓아야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


그것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진리.



옆자리에 앉은 도반이 나에게 무엇이 마지막에 남았냐 물어봤다. “나. “ 내가 남았다고 대답해 줬다. 멋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신보다 아이, 가족’을 선택하던데 나부터 생각하는 게 멋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몇몇 사람들이 돌아가며 발표를 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대부분 ‘나’ 보다는 ‘가족’이 우선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몇 달 사이 내가 참 많이 바뀌었다 생각이 들었다. 아마 몇 달 전이었으면 나도 나보다 아기 또는 가족이 나 자신보다 우선순위에 있었을 거니까.


나는 지금 내가 제일 중요하다.


내가 있어야 아기도, 가족과의 시간들도 있다는 걸 아픔을 겪은 시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내가 스스로 지키기로 결심했고 어느 정도 잘 되어가는 중인 것도 같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또는 “내가 너 때문에 살지”와 같은 말로 부담을 주고 싶진 않은데 아마 이대로라면 가능할 것 같다.


내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만큼 내가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더 큰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란 그런 것이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죽은 뒤 나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어떤 삶으로 비치고 싶은지에 대해, 그리고 남이 봤을 때도 누구나 “그래, 이 사람 이렇게 살았지”라는 말이 나왔으면 하는 문구를 묘비명에 새긴다면 어떤 문장일지 적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있는 힘 껏 나답게 살았다”라고 적었다.


지금 나는 누구보다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 동시에 남들도 내 인생을 보며 ‘그래 너답게 살았다 ‘는 삶을 살고 싶으니까.


다시 한번 슬쩍 나의 묘비명을 본 옆자리의 도반이 말했다.

“오 멋있어요”


멋쩍었던 나는 괜히 장난스레 한번 더 얘기했다.

“지금 저는 제 안에 저로 가득 차있네요”


그랬다.


나는 지금 내가 너무 소중하고, 내가 최우선이고, 내가 제일 중요하다.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뒤 별로였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는데, 돌아보니 얻은 게 많은 것 같다.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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