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과 부모님의 생활 방식
흔히들 결혼은 현실이라고 말하며 꼭 부부싸움은 입 밖으로 내기도 민망할 만큼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드라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상황들,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서 쓰는지 혹은 아무렇게나 손 닿는 대로 중간에서 눌러서 쓰는지, 양말과 옷가지를 뒤집어서 벗어 세탁하는지 혹은 뒤집어 벗더라도 다시 뒤집어 세탁을 하는지 등 사소한 생활습관들이 결혼 초기에는 심각한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
한 사람과 같이 살다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세계는 내가 살아오던 세계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 많아 도무지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삼십여 년간 한 가정에서 부모님 이리는 영향을 받고 자라난 성인은 알게 모르게 부모님에게서 배운, 혹은 간접적으로 닮게 된 삶의 방식 또는 그 방식과 유사하게 본인이 약간은 변형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또 다른 가정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살아온 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그들의 기존 세계의 조정(아름답게 표현해서)을 통해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어떤 경우엔 너무나 닮은 세계들이 만나 재조정의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그대로 나의 세계를 결혼 후 세계로 정착시키는 행운을 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결혼생활에 한해서는 대부분 작고 큰 조정이 필수인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조용한 경우라면, 그저 어느 한쪽이 다 맞춰주거나 포기하고(?) 참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서론이 길었지만 내가 하고자 한 말은, 나 역시 어지간하면 잘 맞춰주는 타입임에도 이 조정의 시간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혼 전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서울태생으로 부모님 댁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결혼 전부터 나의 자취방에서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었는데 그때의 남편과 지금의 남편은 오버 좀 더 하자면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때의 남편은 나의 집의 청결이나 정리정돈 상태를 지적하는 일이 거의 없었으나, 결혼 후 우리 집이 생기자 취미가 청소인 사람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툭하면 연애 때 나의 자취방 청결도를 장난 삼아 거론하는 깔끔쟁이로 변한 것이다.
우리 둘은 청결도의 기준이 아예 달랐다. 내 눈엔 깔끔한 것도 남편 눈에는 아닌 경우가 태반이었다. 성격상 간섭받는 것과 잔소리를 듣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 나를 알기에 자연스럽게 청소의 기준치가 높은 남편은 주로 청소를 담당하면서 우리의 결혼 생활의 큰 조정이 하나 마무리 되는가 싶었다.
여기서 느끼겠지만 이뿐만은 아니라는 것이 남들이 말하는 현실이었고, 진짜 문제는 어머님과의 동거 후였다.
남편은 이제 내 남편이니 우리 둘이서 지지고 볶고 조정을 하던가 싸우던가 알아서 맞춰 나갈 텐데 어머님? 조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다 묵묵히 안고 가거나 맞춰나가야 하는 대상이었다.
내 기준치도 워낙 낮지만 나는 남의 기준도 잘 인정하는 편이라 별 상관없을 줄 알았다. 시어머님의 동거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느낀 것도 아마 이런 성향 때문이었을 거다. 그런데 웬걸? 나는 졸지에 조정 전 남편 두 명과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로.
어머님은 등하원만 담당하시기로 하셨기에 대부분의 집안일을 일체 건드리지 않으셨다. 다만 본인이 우리의 동선이 겹치는 곳은 24평 좁은 아파트의 하나뿐인 화장실, 주방, 거실 등의 공용구간이었고, 집안일 외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어머님은 나와, 나의 부모님과 생활방식이 참 다른 분이었다. (집안일까지 도와주시기로 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고 속으로 수없이 생각했다)
나는 백번 양보해서 그냥 안 보이네, 안 들리네, 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아기는 다른 일이었다. 우리 아기가 시어머님의 생활방식을 물려받는 건 솔직히 싫었다. 어머님의 방식을 존중하고, 남편이 어머님을 통해 물려받은 꼼꼼함과 깔끔함 모두 좋은 습관이라 인정하지만, 그대로는 싫었다. 내 기준 대부분 과했기에, 나는 내 아기가 조금은 유들유들하게, 털털하게 컸으면 했다.
그런 위기감을 처음 느낀 건 아이의 첫 발화에서였다. 아니 세상에, 첫 단어를 떼는 아기가 뱉은 첫 말이 다른 말도 아닌 ’ 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꾸 바닥에 붙은 티끌이나 머리카락을 집어낸다. (어이쿠) 심지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님은 웃겨 죽으시며 깔끔한 건 좋은 거라 잘한다 칭찬을 연발하신다.
아기의 모든 모습이 신기하고 귀엽지만 그 부분만은 용납이 가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뭐 흘리면 묻을 수도 있고 닦으면 되고, 좀 찝찝해도 참았다 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며 그 모든 일들이 아이의 일상에서도 별로 대수롭지 않았으면 하는데 벌써부터 티끌을 고사리 손으로 찾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참다못해 나는 어머님께 직접 한마디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웃으며 말했지만 분명 그 말엔 뼈가 있었고 참다 뱉은 말이라 내가 생각해도 다소 공격적이었다.
“어머님~ 저는 아기가 너무 깔끔 안 떨었으면 좋겠어요 “
이 말인즉슨 어머님이 깔끔 떤다는 말 아닌가.. 그렇게라도 내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면 너무 힘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을 어머님께 비쳤다.
하지만 천성이라는 게 있긴 한가 보다. 겉모습과 지금까지 보이는 성향이 아빠와 똑 닮은 두 돌이 된 지금 우리 아기. 여전히 지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손이나 입에 뭐가 조금 묻으면 닦아달라고 성화를 부린다. 나는 내심 물티슈를 한 장, 두 장 쓸 때마다 죄책감이 이는데 이 아이는 조금 뭐가 묻기라도 하면 당연히 물티슈를 쓰는 거라 각인이 된 것 같아(어린이집에서도 물티슈를 많이 쓰는 듯 했다)이제는 다시 가르쳐야겠다 싶어, 바로 닦아주는 대신 “조금 있다 같이 씻으러 가자”라고 아이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이 입에서 지지라는 말이 첫 단어로 나올 때의 그 아찔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