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좀 해주시면 좋겠다

by Slowlifer

아기 등하원만 해주셔도 감사하지라는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간사한 사람 마음 보다 더 간사한 자식들의 마음일까. 남이라면 오히려 그런 생각 안 했을 텐데 가족이라서 드는 생각이었을까.


내가 생각해도 참 치사스러워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던 말을 남편이 장난 섞인 말투로 내게 말했다.


“엄마가 저녁밥이라도 좀 해주면 좋을 텐데”

나도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그러면서 자꾸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로 스스로가 웃기고, 우리가 웃겼다. 이런 걸 두고 물에 빠진 놈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걸까.


이래서 가족끼리가 더 어려운가 보다 싶었다.


가족이 아닌 남이라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정당한 요구를 하니 피차일반 서운할 것도 없고 눈치 볼 것도 없지 않나.


가족이니까 정당한 대가도 없이 계속 덤을 바라는 마음이 욕심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거다.


그래도 우리는 다 큰 어른이니 그 마음은 묻어두기만 하고 표현하지 않았다. 퇴근 후 부랴부랴 아기 저녁을 먹이고 우리 밥을 챙기면 늘 여덟 시가 넘어야 늦은 저녁을 먹을 수 있었지만 차마 밥 좀 해달란 말을 염치가 없어 할 수 없었다.


그런 생활이 몇 달 지나자, 어머님은 자식들 마음을 읽기라도 하신 듯 밥을 안쳐 주시기도, 간단한 국을 끓여주시기도, 나물을 무쳐주시기도 하며 저녁상을 도와주시기 시작했다.


아마도 모른 채 지켜보시는 쪽도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가뭄에 단비난 듯 행복한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별거 아닌 거였는데 그땐 그 콩나물국이 어찌나 반갑고 맛있었던지.


부모도움 없이 맞벌이 육아를 하면 밤 열 시에 대충 끼니를 때운다는 말이 이젠 더 이상 남일이 아니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9화아기돌봄, 부모님 용돈은 얼마가 적정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