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가 자식만 생각한 것처럼, 시부모님도 손주만 생각하셨다.
어쩌면 자식을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자식 힘들까 봐 도움을 주시려는 마음이었을지도.
아버님은 분명 혼자 지내게 되는 것이 달갑지 않으셨을 텐데도
내색 한번 하지 않으시고 어머님 짐을 챙겨 데려다주셨다.
표현에 서툰 나는
어머님 방에 놓을 두툼한 매트리스를 킹 사이즈로 사는 걸로
마음을 대신 전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든 놀러 오셔서 죄송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지우고 싶었다.
아버님이 혼자 계시기보다는
자주 놀러 오셔서 같이 저녁도 드시고, 시간 되실 땐 주무시고 가셨으면도 했다.
그런데 어머님이 지내신 7개월 동안 아버님은
단 한 번도 와서 주무시고 가지 않으셨다.
저녁을 같이 드신 것도 단 한 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며느리 불편할까 봐 눈치를 보신 모양이다.
시댁의 ‘시’ 자도 듣기 싫다는 말들처럼
시댁은 결코 쉬워질 수도, 가까워지기도 어려운 위치인가 보다.
워낙 세상의 말들이 많다 보니
요즘엔 어른들이 되려 자식들 눈치 보느라 바쁘신 눈치다.
‘요즘 그렇게 하면 며느리가 싫어한다더라’
라는 말을 주변에서, 티비에서 워낙 많이 들은 탓에
정작 나는 괜찮은데 두 분은 아주아주 조심스러워 보이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막상 시도 때도 없이 내 집처럼 손주를 보겠다고
집에 찾아오신다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 수 있겠지.
하지만 참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상황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조금 더 자주 전화라도 드렸어야 하는 건데,
무뚝뚝한 성격 탓에 늘 마음보다 표현이 부족하다.
어머님이 평일엔 집에 와 계시다 보니
주말에 시댁을 찾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버님도 아기가 너무 보고 싶으셨을 텐데
혹여나 부담될까 말씀 한번 전하지 않으신 어머님께도 너무 감사하다.
아마도 아버님이 보고 싶다고 하시면
애들도 일하느라 바쁜데 주말엔 지들끼리 쉬게 두라고 하셨을 테다.
어머님과의 동거는 불편하면서 좋았고 좋으면서 불편했다.
가족이 모여사는 복닥복닥함은 좋은데
내 생활 방식에 간섭을 받는 느낌은 또 불편했다.
아이가 할머니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부모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을 듬뿍 받는 건 좋은데
나의 육아방식과 다른 방식을 고수하시려는 느낌은 또 싫었다.
어쩌다 보니 지나고 나서 떠올려보며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보니 어려웠던 것보다 아쉬운 점이 많이 떠오른다.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