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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요가일기 04화

요가,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운다

by Slowlifer

의도적이긴 하지만 어쩐지 텅 비어버린

내 요즘의 하루 중 아침 요가수련 시간은

이렇든 저렇든 나를 판단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시간이다.


무기력에 곧 무너져버릴 것 같다가도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집 밖을 나서기만 해도

내 몸의 기운이 달라짐을 느낀다.


그러면 이내 다시 밝은 나를 되찾아서

선생님과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힌 사람들에게

명랑하게 인사까지 건네는 나를 발견한다.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아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던

현실에서 도망친 지 어느덧 4개월이 다 되어간다.


나는 그 공백의 시간 동안

내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황은 다를지언정 어쩌면

늘 같은 방법을 써온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회피.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단어.


절대 닮고 싶지 않았던 내 부모의 모습.



요가를 하며 나는

서서히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고통이 느껴져도

곧바로 빠져나오지 않고

잠시 그 고통을 마주하며

그 고통이 익숙 해도록, 지나가도록 기다려본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도

눈을 한번 질끈 감고 다시 한번

들숨, 날숨 호흡을 해보려 노력한다.


도망친다는 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때와 상황에 따라 도망칠 땐 도망쳐야 한다.

그게 어떨 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나의 올해 초의 도망도 그러한 유형의 도망이었다.

나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아야 했기에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던 힘겨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요가를 하는 동안

도망치지 않는 법을 익히려는 이유는


또다시 같은 상황이 왔을 때

두 번은 도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 선택은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도망만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조금은 더 단단해져서

도망치는 것으로 나를 지키는 것 말고

조금은 더 건강한 방식으로 나를 지켜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요가원에서

명상을 하며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어제보다 1cm만 더 깊은 자세를 시도해보고

어제보다 한 호흡만 더 자극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나에게 무리가 되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적정선을 알고

그렇게 조금씩 나는 나를 성장시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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