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그만 질책하기로 했다

90일 병가 연장

by Slowlifer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텃밭으로 달려가 흙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사담당자로부터 병가가 90일 연장되었다는 내용의 기다리던 문자를 받았다.


병가가 만료되기 한 달도 더 전부터 전전긍긍하며 보낸 시간이 허무하리만큼 내가 불안해했던 일들은 단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진단서를 제출했고, 병가가 승인 났으니 회복에 집중하시라는 문자를 받았던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안해하던 내게 심리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뭐가 나를 그렇게 불안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냥 회사에서 연락 와서 저를 원망하는 말을 할 것만 같아요.”

“아픈 사람한테 원망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 아닐까요? 그리고 원망하는 말을 듣는다면 무슨 일이 더 일어날 것 같아요?”

“싸움이 날 것 같아요.”

“갈등이 일어날까 봐 불안한 거네요? “

“.. 네.. 저는 또 일어나지 않은 갈등을 걱정하고 있나 봐요”


선생님은 나를 지키기 위해 싸울 땐 싸워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나는 여전히 갈등을 마주하는 게 어려운 갈등회피형 인간이다.


남편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에게도 마음껏 화를 내본 적이 없다는 말에 선생님은 적잖이 놀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화는 결국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다는 것도, 모든 화살은 스스로에게 쏘고 있었다는 것도 상담을 하며 알게 되었던 부분이다.


실제로 90일의 병가기간 동안 나는 단 하루도 빼지 않고 나를 질책했다. ‘그 선택이 정말 최선이었어?’ 최선이라 생각하고 결정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매일 다시 나를 몰아세웠다. 왜 버티지 못했는지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나를 질리게도 괴롭혔다.


지금의 나는 요가, 명상, 수영, 식물 등 위태한 나를 건져낼 많은 것들을 알아냈지만 그것들이 없는 순간에 나는 약 없이 버틸 수 없을 만큼 강한 불안을 느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끊임없이 움직이거나 아기가 자는 만큼 많은 잠을 자야만 했다.


병가가 연장이 되었고 긴장이 툭 끊긴 기분이었을까.

이제야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이제 스스로 그만 질책하고 날 좀 아껴줘야겠다’


내가 죽겠는데 좀 이기적으로 살면 어떻고,

지금 내가 이렇게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여태까지 내가 열심히 살아냈기에 주어지는 것이니 나는 그걸 누릴 자격이 있다고 나를 토닥여주기로 했다.


어디에선가 본 글처럼

나는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다.


남한테 하듯이 나에게도 너그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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