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요가원에는 주로 출산 후 아이를 혼자 돌보다 이제 갓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한 어린 아기의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또 전부가 그런 건 아니다.
새벽수영을 마치고 곧장 요가원으로 달려오는 아이 없이 여전히 남편과 연애하듯 산다는 지금은 전업주부인 언니도 있고, 사춘기 딸을 키운다며 나를 보며 그때가 제일 효도하는 때라고 말해주는 또 다른 엄마도 있다.
아르바이트하러 가기 전이나 공강시간에 짬짬이 요가원을 찾는, 존재 자체로 풋풋한 대학생 친구들도 있다.
또한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나처럼 오랜 회사생활을 하다 휴직이나 퇴사를 통해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 내 또래의 사람들도 그곳에서는 꽤나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어느새 아침 요가는 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지만 가끔 일이 생겨 아침 요가를 못 가게 될 때는 저녁 요가를 간다. 저녁 요가원은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아침 요가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저녁 요가원에는 주로 퇴근 지옥철을 뚫고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오늘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그 마음들을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그저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걸까. 요가수련이 시작되기 전의 저녁요가원 사람들은 아침요가원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지친 얼굴이 많이 보인다.
아기를 키우고 티 안나는 집안일을 매일 해내는 것이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분명 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둘 다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알면서도 묘하게 다른 그 피로감을 읽어본다.
몇 달 전까지 퇴근길 거울 속의 내 얼굴이 겹쳐 보이며 속으로 생각한다.
‘오늘도 많이 힘드셨구나’
하지만 거기에 오신 직장인들은 그때의 나와 분명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집으로 달려가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입으로 때려 넣다시피 저녁을 때운 뒤 침대로 몸을 곧장 눕혀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대신 한 시간이라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층 맑아진 표정으로 요가원을 떠난다.
하루 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내가 아닌 직장인 페스로나로 살았을지언정 요가원에서는 조용히 가면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힘들었던 마음을 달래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침저녁 구분할 것 없이 사람들이 요가원에서 찾아가는 건 무엇일까. 저마다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은 다를 것이나 본질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엄마로서의 삶 속에 자꾸만 미뤄지는 나
주부로서의 삶 속에 괜스레 작아지는 나
학생이기에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한 나
회사원으로서의 가면 속에 억눌러진 나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아픔과 걱정, 고통을 하나쯤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겉만 보고 저 사람은 부족한 게 없을 거라 섣불리 판단하며 내가 못 가진 걸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에서 강력하게 다가왔던 한 구절처럼 ‘비교는 암‘이기에 나는 매일 요가원에서 타인과의 비교를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다양한 그 배경을 존중하며,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든 모두가 각자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시간을 가진다.
거창할 것도 없었다.
내가 내 마음을 돌보려 요가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엔 또 다른 이유로 자신의 마음을 돌봐주는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을 아껴주려고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가족에게도 터놓지 않을 깊숙한 이야기를 차담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놓게 되는 이유는 아마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그 묘한 동질감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