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한 글쓰기
난 한 때 입신양명을 위해 글을 썼었다. 그런 목적을 가져서인지 글은 영 엉망으로만 써졌고, 고로 글쓰기를 통한 출세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뒤로 나의 글쓰기는 일기 쓰기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남들 다 하는 블로그에도 끼적끼적 적었다가 싸이월드에 허세 가득한 불쏘시개를 열심히 생산했다가.
직장 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내 글쓰기는 더 투박해졌다. 공문서 작성법에 의거한 글쓰기만 가능한 관계로 내가 생산하는 글에는 그 어떤 감정 따위도 허용되지 않았다. 오직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적은 뒤, 두 칸 띄고 끝.
하지만 직장 생활 중에도 감정이 섞인 글쓰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바로 장학금 서류 작성.
특히나 이 학생이 기초수급자도 아니고, 한부모가정도 아니라면 똑같은 문서라 하더라도 더 많은 감정을 실어 글을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서류 탈락이니까.
나를 스쳐간 한 학생이 있었다.
이 아이의 생명을 유지하는데만 매월 700만원이 넘는 병원비가 들었다. 하지만 이 아이의 가족은 서류상으로 집 한 채 있고 차 한 대 있는 ‘평범한’ 가족이었다. 이런 가족에게 매월 기백만원의 병원비는 숨 쉴 수 없는 고통이었다.
장학금 추천서를 쓰기 앞서, 학부모님께 이 아이를 그동안 어떻게 키워왔는지 자유롭게 써 달라고 부탁드렸다. 며칠 뒤, A4용지 5매 분량으로 지난 10여 년의 시간에 대해 담담히 써주셨다. 비록 종이 5장이었지만 한 아이의 숨결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달려온 한 가족의 노력의 무게가 마치 태산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이 무게감을 어찌 공문서로 작성할 수 있단 말인가. 텅 빈 문서 안에 공허하게 떠있는 커서를 보며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 가정은 기초수급대상자도, 한부모가족도 아니다. 고로 장학금 수혜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의 힘듦이 타인보다 적은 것도 결코 아니다.
되든 안되든 이런 가족이 있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알리고 싶었다.
일단 학부모님이 주신 내용에서 비문을 덜고 중복된 내용을 거르고 걸렀다. 그렇게 정제를 하다 보니 5장
분량이 2장 분량으로 줄었다. 이것만 써야 하는 게 아니다. 학교장 추천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학부모님이 주신 글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이 아이를 지도하며 느꼈던 바를 공문서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호소력 있게 작성했다.
공문 작성이 끝나니 밤 10시가 넘었다. 난 왜 초과근무를 달지 않았을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학부모님께 이렇게 공문을 제출할 것이라 메시지를 보냈다. 한참이 지난 후, 어머님께 답장이 왔다.
“그동안 어떻게 키워왔는지만 적어놨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요? “
이 눈물의 무게를 심사하는 분들도 느끼셔야 할 텐데… 내 글솜씨가 과연 그걸 표현해 냈을지 걱정이 되었다.
공문을 제출하고 몇 달이 지났다. 한참이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길래 떨어졌군, 이라고 생각하며 학기말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보건실 통해서 전화가 왔다, 그 학생이
장학금 수혜 대상이 되었다고.
그 전화를 받은 순간, 교육청 심사위원도 결국은 나와 같은 인간이다. 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인간들 마음속을 파고든 글을 쓸 수 있었던 내가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글 쓴다고 불쏘시개 만들었던 게 헛된 시간이 아니었군? 이러면서…
그리고 바로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나에게 또 벌어졌다. 수혜 대상이 된 것도 된 것이지만 나의 학생이 유일한 수혜자였다. 이렇게 좁은 문인줄 알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는 옛말이 딱 이 상황이었다.
가끔은 내가 왜 태어났을까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오랜 고민을 한 결과, 나도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니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란 게 내 결론이다.
재주 없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재능은 바로 글쓰기다. 나를 위한 글쓰기도 당연히 가치 있다. 하지만 남주는 글쓰기는 정말 뿌듯하다. 내가 살아있는 가치를 느끼는 몇 안되는 순간이다.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이렇게 남주는 글쓰기를 계속해나가고 싶다. 하지만 다음 글쓰기는 꼭 초과근무를 달고 할 것이다. 남 주는 글쓰기도 내 업무의 연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