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내 머릿 속도 우람해졌다
어린 내가 살던 우리 동네의 닉네임은 '밤밭골'이었다.
어딜 가나 울창한 밤나무가 가득했던 그곳,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많던 밤나무는 다 베어졌고 그 자리엔 길고 날카로운 철근만 무수히 꽂혔다. 아이들은 철근과 나무합판이 테트리스처럼 쌓인 곳에서 모험놀이를 한다며 열심히 뛰어놀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완벽한 내향인이지만 어린이 시절에도 역시 그러했다.
여자애들이라면 모두 다 하는 고무줄 놀이엔 도통 취미가 없었고 달리기 계주도 늘 꼴등이었다. 피구 할 때도 제일 먼저 아웃이었다. 이래저래 몸 쓰는 놀이엔 재능이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혼자 파고드는 놀이를 즐겨 했다. 그림 그리기, 비디오 보기, 겜보이 하기, 인형 가지고 놀기 등등. 초등학교 중학년이 되며 인형과는 이별 했고 그 빈 자리를 우리 동네 서점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밤밭골은 좁고 좁은 골목길 사이에 연립 주택이 가득한 서민 동네였다.
저 멀리 기차 경적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소가 우는 소리도 들리는 그런 동네. 이런 동네에 도서관이 있을리가 있나, 그런 우리 동네에 우람서점이 생겼고 그 때부터 그곳은 나의 방앗간이 되었다.
넓고 아늑한 서점으로 들어가면 책방 특유의 종이 냄새가 날 반겼다.
읽어도 읽어도 줄지 않는 수 많은 신간들 아래에서 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가끔 서점 주인이 "넌 왜 늘 그렇게 도둑 고양이처럼 서점에 들어오니?" 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눈치 없는 어린이는 주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독서 삼매경이었다.
우람서점 속 책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철근 위를 뛰어 노는 모험에 필요한 기술들, 지구 너머 우주에 있는 미지의 존재(난 지금도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다), 오싹오싹 괴담, 진저에일과 크림티를 즐겨먹던 영국 소녀들의 일상까지. 부모님은 어린 딸의 취미생활을 매우 높이 사셔서(적어도 게임하는 것보단 나으니)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엔 용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덕분에 좁아 터진 우리 단칸방은 내가 읽는 책으로 가득가득 찼다.
내가 읽는 책들은 날 종종 상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혈기 왕성한 우리 부모님이 화끈하게 부부싸움할 때, 그 장면을 지켜보며 '실은 난 이 분들의 딸이 아니라 영국 귀족의 딸인데 운 나쁘게 이분들과 잠시 살고 있을 뿐이야.'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었다. 상상의 시간이 끝난 뒤 현실은 여전히 참혹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상상의 실타래를 잇느라 낮이고 밤이고 내 머릿 속은 참 바빴다.
이랬던 내가 책과 멀어진 것은 중학교 진학 이후이다.
학원을 단순 보육시설로 여기셨던 우리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내 성적을 매우 조이기 시작하셨고, 두 분 성화 가운데 낀 나는 책 따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몹시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겨버린지라 책 읽을 시간에 그들의 무대를 바라보는데 바빴다. 그렇게 나는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못난 어른으로 성장해버렸다.
못난 어른으로 살던 어느 날,
책이라도 읽으면 이 마음이 달래질까 싶어 억지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자다 수준으로 인식될 뿐 책 속에 있는 내용은 내 머릿 속에 영 입력되질 않았다. 병원에 가서 이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니 현재 우울증 상태에 빠진 뇌를 가졌기 때문이란 답변을 들었다. 책을 한번 펴면 밤을 새서라도 끝을 보고야 말았던 어린이는 이제 없다는 사실이 내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자살방지를 위해 남편 따라 훌쩍 영국으로 떠난 어느 날, 나는 아주 심심했다.
심심하던 차에 영어도 못하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남편의 책장을 살폈다. 그 책장에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꽂혀 있었다. 한강 작가... 잘은 모르지만 뭔가 큰 상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니(그 땐 노벨상 받기 전이었다) 중년의 지적 허영심을 채울 겸, 무료한 시간을 보내볼 겸, 내 뇌가 우울증에서 빠져나왔는지 확인할 겸 한번 읽어보기로 결심을 했다. 영국의 어느 노천까페에서 크림티를 탁자에 올려놓고 책장을 넘기니 어릴 때 읽었던 책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책 안으로 내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이런 기분, 우람서점에서 책을 읽을 때나 경험할 수 있었던 귀한 기분이다.
그 날 이후, 내 손에서는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기계발서보단 소설을 읽으려 노력했는데 그 이유는 소설 속 아름답고 수려한 표현들이 나의 머릿 속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한국에서 똑같은 쌀밥 먹고 똑같은 한국말을 쓰는데 왜 난 아직도 표현이 이리도 어리숙한걸까, 소설가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일까 그저 부럽기만 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동네 구경을 하다가 작은 서점을 발견했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니 어릴 적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우람서점에 들어온 기분을 잠시 맛봤다. 작지만 하얗고 깔끔한 내부, 셀 수 없이 꽂혀 있는 책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주인까지. 마음만 같아서는 책 한 권을 그곳에서 읽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제는 주인장 눈치를 보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하나 골라 결제했다. 이 서점에서는 10% 할인도 되고 심지어 적립도 된다.
우람서점은 어린 나의 생각 주머니의 사이즈를 키워주고 묵직하게 만들어주던 공간이었다.
비록 지금은 그 주머니의 크기도 작아지고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도 영 쓸데없는 것들이 많지만 중년이 되어 다시 찾은 독서란 취미가 이 주머니의 양과 질을 든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성큼 다가오기 전에 저번에 샀던 책 한 권을 완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