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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존밀크 Aug 05. 2024

목적이 불순한 글쓰기

글쓰기로 대학 가기로 마음먹었던 시절



초등학교 때 잠시 시인의 꿈을 꾼 뒤, 나의 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뭘 하며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 학교에서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본 뒤 몹시 좌절했다. 이 성적으로는 그럴싸한 대학을 절대 합격하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공부 못하는 왕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점점 고립되기 시작됐다.



난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각종 활자를 강박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활자 중에는 학교 교지가 있었는데 거기엔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에 들어간 선배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그 선배는 이 대학을 합격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지 않았지만 글 하나는 기깔나게 잘 써서 결국 해당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단 이야기였다.      



인터뷰를 읽은 순간 내 인생에 작은 돌파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이름 있는 백일장에서 수상을 하고, 그 상들이 높게 쌓이고 쌓이면 이것들로 명문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할 수 있다는 합격비책을 획득해버린 것이다. 어쩜 이렇게 행복한 세상이 있나, 왜 이걸 여태 모르고 살았을까. 내가 이 대학에 들어가면 학교 친구들은 나를 다 우러러보고 이 학벌로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겠지? 그때부터 나는 좋은 대학에 최종합격할 수 있는 글을 써보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당시 나의 글쓰기 목적은 정말이지 속물 그 자체다. 목적이 이러하니 좋은 글은 절대 써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열심히 썼다. 대학도 대학이지만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글쓰기 하나뿐이었다.     



당시 나의 노력 중 하나는 바로 ‘영감 노트’였다. 이 노트는 갑자기 시상이나 영감이 떠오르면 그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급하게 써 갈겼던 일종의 아이디어 노트였다. 심지어 잠을 자던 와중에 순간적으로 영감이 떠오르면 급하게 일어나 그 노트에 열심히 적어댔다. 그 노트에 있는 내용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아이디어였다면 참 좋았겠다만 성인이 되어 들여다본 그 노트 속 아이디어는 정리가 전혀 되지 않은, 감정의 소용돌이만 가득한 정체불명의 불쏘시개일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잠을 줄여가며 글을 쓸 정도로 참 간절했다. 푸른 새벽에 홀로 일어나 시를 쓰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17살의 소녀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쉬는 시간에 함께 놀 친구가 없었던 나는 그 시간에 잠을 자거나 백일장 정보가 있는 전담실에 놀러 가고는 했다. 백호처럼 생긴 국어 선생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게시판에 있는 정보를 찬찬히 살펴봤다. 그렇게 보다가 나갈만한 백일장이 있으면 바로 신청을 해서 해당 대회에 나가곤 했다. 쉬는 날엔 부족한 어휘력을 보충하기 위해 각종 고전과 문학 속에 빠져있곤 했다. 당시에 시집을 읽으며 ‘이 얇은 책이 도대체 왜 15,000원이나 할까’란 한심한 생각을 한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그렇게까지 했으면 글로써 열매를 맺었어야 했는데 애석하게도 난 글쓰기 재주가 참 없었다. 각종 감정만 가득 찬 정제되지 않은 내 글은 각종 백일장에서 외면을 받았고 심지어 교내 백일장에서도 입상을 하지 못했다. 나름 2년의 시간을 갈아 넣었는데도 이렇게 결과가 없으니 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3의 아침이 밝았다. 비장한 마음으로 책가방을 싸며 영감노트와 습작노트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꼭꼭 숨겼다. 그리고 각종 백일장에 더이상 참여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절필’을 한 것이다. 나 따위가 절필을 한다고 이 무정한 세상이 알아주겠나. 오직 전담실 백호 선생님만 나에게 “너 이제 글 안 쓰니?”라고 물어 봐주실 뿐이었다. 그 뒤로 난 오로지 수능공부만 했다. 늦게 시작한 공부라 수능 성적은 몹시 초라했고 대학 역시 듣도 보지도 못한 곳으로 진학했다.     



이런 역사가 있는 나의 글쓰기. 근데 중년이 되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난 왜 다시 습작 노트를 펼쳤나 곰곰이 생각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당시 글쓰기 목적은 매우 속물적이었으나 글을 쓰고자 하는 나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론 열과 성을 다하여 글쓰기 하나에 내 영혼을 불살랐었다. 비록 그 어떤 결실도 맺진 못했지만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지금은 그것과 전혀 상관없다. 내가 이 나이에 명문대학을 다시 들어갈 것도 아니고, 신춘문예에 등단한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어떤 목적 없는 순수한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푸른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나 그을음 가득한 영감노트에 아이디어를 쓰던 그 소녀의 모습, 오직 그 모습만 내가 되찾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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