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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랩기표 labkypy Jan 08. 2025

닫힌 세계관에서 발버둥치는 잊을 수 없는 눈빛

[영화] 화란

연규는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하루하루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화란(네덜란드)으로 도망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그의 곁에는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의붓 동생 하얀이 있습니다. 하얀은 이름처럼 맑지도 순수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세상에 대한 적대감과 냉소로 검게 물들어 버렸죠. 새로운 가족이 된 두 사람의 관계는 전형적인 가족의 애정보다 고난 속에서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동지애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사람을 서로 발견한 셈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조직폭력배 중간 보스인 치건이 그들의 삶에 끼어듭니다. 치건은 우연히 연규가 일하는 식당에서 그를 보게 됩니다. 마치 길 잃은 강아지처럼 방황하는 연규의 모습에서 치건은 자신의 과거를 투영합니다. 이미 비뚤어진 세상 속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던 치건은 연규를 돕고 싶어 하지만, 곧 자신의 손이 이미 너무 더럽혀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잘못된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이 연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다는 현실에 절망합니다.


이때부터 영화 ‘화란’은 단순히 폭력과 범죄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을 가두고 있는 환경과 세계관을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치건의 대사처럼, ‘살아 있는 시체’가 된다는 것은 그들이 갇혀 있는 환경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도망. 그리고 도망은 단순히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갇힌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영화는 던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서사적 재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짙은 누아르적 색채와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 그리고 치건의 내면적 갈등과 연규의 무너져 가는 희망이 관객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 ‘화란’의  김창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도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화란은 새로운 삶을 꿈꾸는 상징입니다. 폭력과 절망 속에서도 탈출구를 찾으려는 이들의 갈망을 담고 싶었습니다.” 또한, 치건 역을 맡은 송중기 배우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치건은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지만, 결국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 채 부서지는 인물입니다. 연규와의 관계를 통해 그도 변화하고 싶어 했지만, 현실의 무게가 너무 컸던 거죠.“


‘화란’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용기를 내야 하는가를 묻는 영화입니다. 그 답은 어쩌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배우들의 눈빛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깊이는 오랜만에 만나게 된 짙은 누아르 영화의 묵직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https://youtube.com/shorts/CkwB1ikyCfM?si=j7_9AwZJsQ1LHY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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