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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A Feb 03. 2022

나는 낀대다

꼰대와 낀대사이

얼마 전 부서에 신입사원이 두 명이나 들어왔다.

규모도 작고 조직 관점에서 힘도 없는 부서 치고는 가당찮은 대우이긴 하지만 그들을 케어해야 하는 나로써는 고마움보다는 부담과 걱정이 몇 배나 크다. 오늘 OJT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2년 전쯤 끄적이다 마무리짓지 못한 글이 저장 목록에 숨죽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덧 내가 차장에서 부부장으로 승진한 것 외에는 일이나 주변 사람, 비전 등 여러 가지가 나아진 것이 라고는 없는 것 같아 씁쓸했다. 엊그제 쓴 글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지금이나 그때나 좋은 쪽으로 변한 것이 없었다. 꼰대들이 2년 더 늙었고 낀대였던 나는 꼰대행 열차를 탔고 MZ라 불리는 후배 세대는 아마 다른 열차를 탔거나 타지 않았거나 함으로써 점점 나와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외롭고 재미없는 감정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몇 시간 후, 내 이야기를 들을 저 친구들에게 어떻게 희망과 열정의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

내게 지금 제3의 페르소나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하) '나는 낀대다' 원문

내가 속한 조직은 올드하다.

조직문화 자체가 보수적이기도 하고 절대적으로 늙기도 했다.

직원 평균 연령 43세, 부서장은 대체로 50세 언저리에 있고

40대 중반과 50대 초반의 부부장들은 10년 이상 장기 집권중인 부장 아래 소수는 희망고문을 당하며

다수는 마지못해 선인장처럼 숨죽여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 턱밑에 나와 같은 부류가 있고 내 아래로 지들이 90년 대생인 줄 착각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부부장 이상의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꼰대다.

상사가 시키는 일이면 무조건 따르는 삶을 살아왔고 후배 역시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기업의 성장사를 함께 써온 주역으로써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의지 역시 늙어가고 그들의 능력은 막상

의지력을 능가하지 못한다.

그들의 일군 성과의 반은 시대가 만들어준 '성장'이라는

거대한 기세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무에 손을 놓은 지 꽤 오래되어 녹이 슨 고물이  것이다.

발달한 것이라고는 눈치, 줄 대는 능력 그리고 생존본능뿐이다.

일의 순서, 복합성, 의외성 그에 따르는 루틴한 운영 업무의 고단함 같은 것을 잊은 지 오래다.

아마 각종 회의에 끌려가 앉아 눈치 보는 것이 업무 이상의 에너지를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대부분 4B연필로 대충 쓱쓱 그린 스케치를 실무자에게 건네며 이제 살아 숨 쉬는 듯한 그림을

빨리 그려내라 주문을 한다.

울며 겨자 먹기 격으로 죽을 고생 하며 완성해두면 그들은 본인의 실력 덕분이라 생각한다.

아니, 심지어 이 그림이 호평을 받으면 자기 실력이고 혹평을 얻으면 채색이 잘못되었다는 탓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최악인 것은 스케치조차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시대는 역할 조직을 논하지만 막상 역할을 명시할 수 있는 자는 소수이고 발언권을 가진 자 대부분은 기술하기 어려운 역할을 갖는다.

그들은 주로 특정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바로 위에서 숨 쉬고 존재하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20 중반에서 30 중반의 친구들은 소위 말해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엘리트들이다.

부모의 치밀한 플랜 하에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차근차근 대기업 입사 루트를 밟아온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라는 세계관에 입각한 교육을 받았으며 고로 자아성찰에 기반하지 않은 자존감을 장착하고 있다.

물론 그들 역시 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열심히 배워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그 능력을 크게 써먹을 일도 없이 무능한 꼰대와 나와 같은 낀대 아래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수년을 허비하고 있지만 낀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핵심업무를 맡게 될 기회조차 없다.

이렇게 살다가는 업무적 성장도 사장이나 임원이 되겠다는 포부 따위를 품는 것이 화성행 로켓을 타겠다는 다짐보다 부질없어 보인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워라밸, 욜로, 파이어족과 같은 시류에 가까워지고 회사일에는 욕 안 먹을 만큼만, 때로는 법이 시킨 만큼만 하겠다는 지극히 전략적인 선택하게 된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나와 같은 세대는 일평생 일만 하는 부류다.

입사 때 선배들에게 일을 배우며 그들의 일을 떠안고 새로운 일이 생기면 그 일들을 하나하나 더하며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나는 진정한 노동계급인 것이다.

우리들도 후배들에게 일을 주고 싶지만 전략적인 젊은이들은 하고 싶은 일만 선택하기도 하며 다소 무리스럽게 일을 넘기면 바로 블라인드 같은 앱에 들어가 시대가 어떤데

지가 뭔데 하며 인격모독을 한다.

그래,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욕은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오히려 고민스러운 것은 메인 업무가 주어지지 않은

탓에 후배들이 해온 결과물은 마뜩잖을 때가 대부분인데 왜 더 잘하지 못했냐 채근하게나 이렇게 해보면 어떠냐 조언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을 잘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월급만 받아가면 될 뿐 성공할 필요  없다는 사람에게 무슨 지도가 필요하겠느냐는 말이다.

심지어 내겐 일을 잘하고 성실한 친구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이 효용 없는 칭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야심 있는 친구들은 고통스러운 업무를 하는 것을 택하기보다 평가권을 가진 꼰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입으로만 일하는 신공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것이 왜 가능하냐면 꼰대는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아도 어떤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 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촉수조차 제 기능을 상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대기업 다니는 또래 친구들과 얘기를 할 때마다 '너네도 그렇냐' 한마디로 대동단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 낀대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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