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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A May 01. 2020

똥차가 밀려서

내가 어릴 때 둘째 삼촌은

서른을 훌쩍 넘긴 노총각이었고

그 뒤를 잇는 남동생들까지 줄줄이

총각인 채로 늙어갈 처지었기에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면 어른들께 타박을

받기 일쑤였다.

도대체 언제 장가가느냐,

장가가면 냉장고 해주겠다는 어설픈 

잔소리는 옆에서 듣고 있던 어린 내게도

엄청 식상했는데

누군가 던진 한마디는 웃기고도

꽤나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야, XX야, 장가 좀 가라.

똥차가 밀려서 뒤에 세단이 줄줄이 서 있는 거

안 보이냐."

그 당시만 해도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명절 때마다 길 위에서 스무 시간 정도

사투를 벌이던 시절이라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한 그 충격적인

말이 꽤 오랫동안 잔상에 남았다.

불행히도 그 이후 꽤 오랫동안 세단들은

움직일 듯 선듯하다가 같이 똥차가 돼버리고 말았다.


마흔에 접어들고 나니 마음은 점점 급해지는데

직장생활은 변화가 없어 정체된 도로에서

한없이 서있는 시간처럼 답답하고 짜증스럽기

짝이없다.

앞차는 사고가 난 건지 고장이 난 건지

길을 잃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떡하니

버티고 있고 답답한 마음에 경적을 울려봐도

들은체 만체 미동이 없다.

그 뒤에서 마흔 언저리 일개미들은

실무 하기도 바쁜 지경에 상사 스터디까지

시키느라 바쁜데 결정을 기다리는

중요한 일들은 더 높은 상사의

의중을 살피며 줄줄이 대기만 하다가

밥도 여러 번 태웠다.

더 애석한 것은 가망 없는 똥차 뒤에

나처럼 낡아가는 똥차가 우물쭈물하고있고

그 뒤로 고급 옵션까지 장착한 새 차들이

비닐도 못 뜯고 엑셀 한번 밟지

못한 채로 폐기 처분당할 신세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길이 이렇게 밀리면 누군가는 국도행을 선택할 만도

한데 늙으나 젊으나 고속도로행만 고집하는 것도

한심한 노릇이다.

분명코 나쁘지 않지만 좋지도 않은 이 상태는

불안하다.

이 길에 서 있다가 영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길도 어쩌면 가다가 끊겨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흘끔거릴 뿐 과감하게 핸들을 틀지도

못한다.

성장이 정체된 시대,

새 도로를 만들거나 목적지를 바꾸거나

참여자가 줄지 않는 한 해결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생각할수록 골치아프다.

똥차도, 헌차도, 새차도 저마다

고민하고 있을 문제이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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