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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A Sep 26. 2019

신사업을 한다는 것

자존심을 버리는 일

베트남 법인 임원회의에 참석해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뜻뜨미지근한 반응과 쏟아지는 질문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질문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적어도 관심 있게 듣기는 한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설득해야 하는 일은 새롭고 어렵다.

무자 입장에선 최악이다.

이런 경우 긍정적 반응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뭐든 하고 싶어 안달 난 신입사원,

어필할 것 없어 건수 하나 잡으려는 하이에나,

신문에 자랑하고 싶은 임원,

혹은 진짜 이 일을 이해하는 사람 정도다.

(운이 좋으면 조금 있고,

있어도 권한이 없어 무쓸모인 경우가 많다)

하루하루 일에 치이는 대개의 일개미들은

지금 이대로 하던 일이나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오기 전부터 반응 싸늘할 거라는

예방주사를 맞고 와서 별로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동남아식 영어로 쏼라쏼라 떠든 것이라

덜 아팠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사업 분야를 맡으면서 조직의 생리와

월급쟁이의 심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순진하게 데이터나 돌리면서

고고 한척하던 나는 이제 없다.

첫 만남에 거절은 당연하고 공감은 과분하다.

한둘의 지지자에서 시작해 그 세를 넓히는 것

그것이 나의 임무다.

내가 전문가 입네 하고 내세울 자존심 따위는

상대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

일에 자존심을 담아야 그들의 시선이 변하는 것이다.

불현듯 몇 개월 전에 만난 스타트업 대표가

생각났다.

제안서를 보니 준비가 안된 티가 심하게 났다.

사소한 질문에 멘털이 무너지더니

내게 들어줄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해외 유명대학을 나온 어린 녀석이었다.

우스웠다.

나도 어릴 땐 그랬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자존심은 오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이리저리 깎이고

아파하면서 깨달았다.

사업가에게 자존심은 간절함에 반비례한다.
진정한 자존심을 갖고 만들어낸 것이라면
때론 자기를 위한 자존심은 버리고 사업을

살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출장에 실망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 질문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따로 연락할 것이다.

그들 중 한둘이 나와 같은 배를 탈 것이고

새로운 길을 함께 걸어 나갈 사람들인 것이다.

자존심은 잃어도 동료를 얻으면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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