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having 08화

#기술과 예술

07_만들기를 좋아하세요?

by HoA

나는 만들기를 좋아한다. 폐기처분 직전에 있는 재료로도 생활에 필요한 아이템을 뚝딱뚝딱 만들어내어 맥가이순(엄마의 성함은 일순이다)이라 불리는 엄마, 나무젓가락과 노랑 고무줄로도 수십 가지의 고성능 총을 만들어내는 아들, 돌잡이 때 반짇고리를 고른 덕인지 무엇이든 쓱쓱 그려내는 딸을 보면 아마도 우리는 만들기 DNA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내가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미술이나 가사 시간에 조형물, 공예품을 만들 때 유난히 집중이 잘 되었고 꽤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어 손끝이 야무지단 얘기를 듣곤 했지만 열심히 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생활을 한참 하고 나서야 내가 사물이든 콘셉트이든 상품이든 무엇이든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작’에 잘 맞는 부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일을 경험했지만 ‘모델러’로서 가장 오래 일할 수 있었고 여전한 애정과 열정이 솟는 이유도 이 업무가 금융사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유형의 일 중 비교적 원작자의 의도가 존중받을 수 있는 기술의 영역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델링을 시작했을 때는 도제식으로 업무를 배웠다. 선배 모델러의 일을 꽤 오랜 시간 도우면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보내고 나면 주체가 되어 모델을 만들 기회가 부여되는 식이다. 내 경우는 선배의 퇴사로 인해 기회가 비교적 빠르게 주어졌고 운 좋게도 모델 개발 생산성을 높이는 툴이 도입되던 시기라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모형을 만들어내어 압축적 경험을 했다. 그렇게 혼자서 모형을 만들고 스스로 완성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기 시작하고부터는 화가가 그림에 서명을 남기듯 내가 만든 모형에는 특별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더불어 내가 만든 모형에 관한 보고서와 요건 정의서 등 이력이 남아야 하는 파일명 앞에는 일련번호처럼 내 성을 붙였다. 몇 년 동안 그런 파일이 꽤 많이 생겼다. 지금도 후배들이 ‘윤’ 파일 보고 많이 공부했다는 얘기를 종종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부끄러움과 뿌듯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미숙한 실무자로서 실수한 것들도 있을 것이고, 당시에는 최선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미천한 기술인 경우가 많을 테니 이제는 누군가 시대변화에 맞추어 제발 업데이트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스스로 칭찬하고 싶기도 하다. 나는 초심자 때 이해하기 어려운 원서를 보면서 겨우 힌트를 얻었고, 참고할 만한 자료도 별반 없는 채로 이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당시 만들었던 모형이 아직도 건재하고, 다른 회사가 벤치마크하기도 하는 걸 보면 내 방식의 모형개발과정을 이해해 보는 것도 초심자에게는 필요한 학습의 단계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정석을 완전히 익히고, 변형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만드는 것이 전문가가 되는 길이라면 익혀야 할 ‘기본’을 제공한 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데이터 시장에 진입자가 많아지면서 모델을 빠르게 만들어서 바로 배포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형개발 과정이 어떠했는지 이력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도 많고 결함이 나중에야 발견되는 일도 잦다. 물론 어떤 일은 그렇게 해도 된다. 하지만 적어도 금융사에서 모델을 개발하는 사람은 그런 마인드로 데이터를 다루고 결괏값을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객에게 돈을 빌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고객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그 몇 백, 몇 천만 원의 돈이 누군가의 수술비가 되기도 하고 등록금이 되기도 하며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던 사람을 순식간에 연체자로 전락시키는 도화선이 되는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일에 무조건적인 효율지향, 무지성의 기술중시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금융사에 종사하는 모델개발자는 모델링 과정과 결과에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이것은 마치 예술품과 작가의 관계와 비슷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주 오래전 사내 시스템 프로파일 등록창에 다짐 한 줄을 쓰는 캠페인을 했었다. 그때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이터 분석가”라고 거창한 글을 입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도 감히 ‘예술’이라는 단어를 썼던 것을 보면 나의 길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던가 보다. 데이터를 이용해서 어떤 고객이 더 많은 매출을 일으킬지, 누가 돈을 빌리고 부도를 낼지, 앞으로 연체 지표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예측하는 모델을 만드는 일을 우리는 흔히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데이터라는 비슷한 재료를 가지고도 다른 콘셉트와 목적을 가지고 자신만의 철학을 입혀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업무의 경중을 떠나 타인이 요구하는 기능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완성도 있게 구현할 수 있느냐로 평가받는 엔지니어와의 차이점이 바로 거기 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의도가 사용자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실력이 쌓여 어느 경지에 오르고, 또 다른 이에게 신뢰를 얻게 된 후에는 모형이 기능적 요건을 다소 맞추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른 관점의 서사를 가지고 사용자를 설득하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늘 익숙한 유형을 벗어나 다른 장르를 만들어낼 때, 처음엔 생소하지만 누군가 감화되고 확산되면 시장의 표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이 바로 모델링이 예술과 닮은 점이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발라드, 힙합, 락, 재즈정도의 구분이 가능하겠지만 전문가가 되면 같은 장르 안에서도 누가 만든 곡인지, 또 어떤 곡인지 알고 섬세한 차이를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모델을 만들고 쓰는 일도 그러하다. 이 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무차별적인 데이터 뭉치일 수도 있겠지만, 사용자의 전문성이 깊어질수록 시장을 이기는 금융전략을 세우기 위한 도구인 모형을 선별하는 데 까다로워진다. 다시 말해 도구를 감별하는 눈이 생기고 모델러의 사상과 기술을 이해하면서 남과 다르고 빠르게 움직여 시장을 선도해야 지지 않는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모델링을 직접 하지는 않는다. 차세대 모델러를 육성하고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운용할 것인가가 내게 더 중요한 롤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거니와 뜻대로 아웃풋이 나오지 않아 직접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겼다. 조직을 리딩하는 일이 너무 재미없고 힘들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팀의 미션을 세우고, 성장 전략을 다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연결하는 과정 역시 재료가 다를 뿐 ‘만들기’인 것은 매한가지일지 모른다고 생각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부담을 오히려 무기 삼아 새로운 그림도 그리고 기존의 행보와는 다른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니 꽤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새로운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품 활동의 하나다. 재료가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만든 것은 믿을 수 있는 것, 흥미로운 것, 누군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되기를 바라며 기술이 예술로 승화하는 그날까지 또다시 나에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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