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_생존의 조건
우리 집 식구들은 과일을 많이 먹는다.
아이들 어릴 때 육아를 도와주시던 시터 이모님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바가
'이렇게 과일 흔한 집은 처음'이라고 하실 정도로 과일을 노상 먹는다.
가족 식단을 책임지고 계시는 친정 엄마가 기본적으로 과일을 좋아하시기도 하고
시댁도 밥상엔 늘 과일이 놓여있어야 하는 집이라
아이들은 아기 때부터 과일 없는 식탁을 경험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계절에 따라 주종목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사시사철 함께하는 과일은 사과와 바나나다.
사과는 요리해서 남들 먹이는 것은 좋아하지만 정작 본인은 잘 챙겨드시지 않는 친정 엄마가
그나마 가장 좋아하시고 간혹 끼니 대신 때우는 것이기 때문에 필수다.
바나나는 있으면 먹지만 굳이 찾지는 않는 정도의 지위였다가 이삼 년 전부터 자주 먹는 과일이 되었다.
어릴 시절에는 병원에 갈 때 우는 나를 달래려고 리어카에서 한 두 개 정도 엄마가 사주시던 게 바나나였다.
그때는 주사 맞는 아픔을 견뎌낸 포상으로나 먹을 수 있던 귀한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나나는 가장 흔한 과일이 되어버렸다.
지금 사람에게 바나나란 그냥 껍질 까기 편하고 호불호도 별로 없고 배부른 식사대용 과일 정도로
여기는 것이 바나나일 것이다.
어떤 것이든 흔해지면 매력이 감하게 마련이다. 있던 의미도 사라지고 본연의 가치도 무색해진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도 있으면 먹고 없어도 찾지 않는 것이 바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바나나가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은 것은 아들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입이 궁금해 바나나 하나를 까서 먹던 내게 아들은 "엄마, 바나나 많이 드세요. 앞으로는 점점 먹기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품종인데
바나나 재배국에서 단일 품종만 수확하다 보니 파나나병에 걸리면 멸종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행히 생물학자들이 유전자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지만
어쨌든 우리가 아는 바나나가 앞으로 계속 이렇게 흔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거다.
아이에게 이런 신기한 얘기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물었더니 '바나나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책에서
읽었다며, 사람들이 상품화하기 좋은 품종만 고집하다 보니 이제 재래종은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같이 해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 순간이 내게 있어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그동안과는 다른 해석을 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실 나는 다양성이라는 것이 지향되어야 할 가치라는 것에 어렴풋이 공감했지만
스스로의 의식이나 행동양식을 바꿀 만큼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특히나 업무를 함에 있어서는 효율성을 굉장히 따지는 나와 같은 유형에게 다양한 생각, 관점, 접근법이란
과속방지턱처럼 존재 이유야 알겠지만 결국은 불편함을 초래하는 방해물이라 여길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누구보다 새로운 접근법, 파괴적 혁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남들은 당연시하던 것에
의문을 품고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진보적인 방법론을 적용해 보려고 용을 써왔으면서도
그런 나의 성향이나 시도가 '다양성'으로 설명되는 단면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라는 사람이 지루함을 부정하고, 반골성향이 있어서 기존의 방식을 의심하는 것이라 생각했지
다양성을 지향하는 방식이라고 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하는 시도는
저항에 가깝지 생사를 가르고 존폐를 결정할 만큼 당위성을 가진 일이라 자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것을 주장하고 실현하는 일은 지지하고 지원하는 사람보다는
그저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 그래서 더 피곤하고 불안한 일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함께 개척해 나가야 하는 동료들에게 가끔은 미안할 때도 있었고 괜한 내 욕심인가 자책도 했다.
뜻을 얻으면 함께 가지만 뜻을 얻지 못해도 혼자 가겠다고 다짐을 해야 하는 외로운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 덕분에 바나나 멸종 위기설을 접한 이후, 내가 추구하는 바를 나 스스로 더 응원하고
당당히 여기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힘은 일이 덜 힘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명분과 당위성이 부여된 일에는 변화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책임과 부담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정답이 있는 업무 안에서도 그 답을 가장 효과적으로 찾는 다른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애쓴다. 때로는 정답이 없다고 여겨지는 일에 대해서도 정답에 근사하는 규칙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안된다고 얘기하는 일들을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시대에 그들의 방식으로 되지 않았을 뿐 원래 안 되는 일은 없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음에 있어 나 자신과 동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이다.
젊은 우리가 새롭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조상들의 구습이라는 무덤 속에서
소멸해야 할 것이다.
다양성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자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이다.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정해진 길 그 외의 것을 준비하자."
때로는 자신의 뜻이 다수의 생각과 다른 것 같아 주눅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을수록 소심해지거나 불만이 쌓여 부정적인 에너지가 커질 개연성이 높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고 여전히 그러하다.
혹시 누군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바나나 이야기를 떠올리면 좋겠다.
허기질 때 바나나가 에너지를 보충해 주듯, 의지가 흔들리는 순간, 외로움에 지쳐 포기하려는 순간
잠시 잠깐이라도 다시 기운을 주는 영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