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미에 대하여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관광명소 하겐베크 동물원을 다녀온 적 있다.
동물원이 재미있을 나이는 아닌 나에게도 흥미와 또렷한 인상을 남겨준 곳이다. 한국과 달리, 입구에서 티켓을 확인하고 나면 바로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 보관함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짐이나 음식을 놔두고 나서야 비로소 깨끗한 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치 이제부터 이 곳은 수많은 동물들이 사는 곳이니 예의를 지켜 입장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마냥.
새들을 풀어놓은 새 정원을 조심스레 지나면 코끼리가 내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울타리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나타난다. 코로 당근을 달라며 자연스럽게 사람과 교류하는 모습이 사뭇 신선했다. 그 외에도 동물의 왕인 사자와 호랑이가 물가 근처에서 한가로이 쉬는 모습, 한가운데 위치한 호수에 홍학들이 쉬고 있는 모습, 저 편 아쿠아리움에서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 그것들은 이 곳이 동물원이라는 느낌보다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엄연한 집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어째서일까. 안내 책자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갇혀있어야 할 토끼나 사슴과 같은 여러 동물들이 여기저기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그리고 바로 옆에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크레페를 먹고 있다. 내게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아름다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 선을 넘지 않는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동물원의 모습이 아닐까.
사실 하겐베크 동물원이 유명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몇 세기 전, 하겐 베크 동물원은 인간을 전시해 놓은 동물원이었다. 지금은 그 역사를 알 수 있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한 때 원시부족이나 흑인들을 가둬놓았다고 한다. 우리 속의 사람들은 바깥의 사람들을, 바깥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둔 우리 속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들은 상대방과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라는 구분적인 생각이 있었을 거라는 거다. 그 생각들은 잔인하리만치 무서워서 순간 나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 백 년 후 지금의 동물원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겐베크 동물원은 시간의 무게를 버티며 잘 흘러왔다. 그렇기에 이렇게 훌륭한 동물원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여백 있는 역사는 없다고 어느 작가가 말했듯이, 이 동물원이 진한 존재감을 풍기는 이유 또한 그러한 것이 아닐까.
하겐베크 동물원은 내가 23년 동안 알고 있던 여느 동물원들과는 조금 다르게, 공간의 의미와 공간이 뿜어내고 있는 시간의 무게를 꽉 차게 느낄 수 있는 무거운 곳이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 동물원에도 아니, 모든 장소에 필요한 무게일지도 모른다. 필요한 무게, 이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