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가 내리고 아침저녁 날이 갑자기 훅 추워졌다. 가을 단풍도 오기 전에 낙엽질 모양이다. 주말에 다녀온 청계산엔 아직 단풍이 멀었던데 초입부터 스산한 바람에 초겨울 같다. 지난주 "개가 행복해지는 긍정교육""을 읽으며 별 달 이에게 몰라서 못 가르쳤던 기본 산책 교육을 시작할 최적의 날을 손꼽아 봤다. 책에선 14주, 108일 이후가 적당하다고 하나 이런 날씨라면 오히려 추워서 산책을 못 나갈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훈련사님의 조언데로 3차 예방주사를 끝냈으니 과감히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미 강아지 띠에 매달고 여러 차례 산책을 나갔지만 목줄을 하고 밖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다. 과연 생후 90일 된 공주님의 첫 산책은 성공할 것인가?
일단 비장의 무기, 간식을 정성껏 한입에 먹을 크기로 잘라 주머니에 담고 엄마견 달이 목줄을 최대한 줄여서 목줄을 채워막내 공이 만 데리고 나갔다. 낯선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공이는 설레는 듯 살짝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나아갔다. 햇볕은 따스하지만 바람이 차서 몸을 부르르 떨며 몇 발 가다 멈춰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새삼스레 바닥에 널려있는 담배꽁초, 쓰레기 기타 등등 모든 게 내 눈에 거슬린다. 처음 밟아 보는 세상이 삭막한 콘크리트에 지저분한 동네 골목이라는 게 좀 미안했지만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계에 익숙해져야 할 터.. 난 이리 와!! 를 해가며 열심히 앞으로 전진했다. 공주님이 조금 가다 멈추고 쉬엄쉬엄 딴짓을 하는 통에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20분은 족히 걸린 듯하다. 그래도 간식 먹는 재미에 이리와 하면 따라오고 한발 두발 걸어 햇살 아래 사진도 찍고 무사히 산책을 마쳤다.
새삼스레 아빠견 별이와의 첫 산책이 떠올랐다. 6년 전, 생후 6개월 별이가 첫 주인과 살던 전주에서 차를 타고 상경해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정말 부들부들 떨며 꼬리를 감추고 눈도 못 마주쳤다. 그런 별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첫 산책을 나가던 날 한발 내딛기조차 무서워해 결국 안고 집에 돌아왔었다. 겁쟁이 별이가 제일 무서워했던 곳은 하수구였다. 구멍이 숭숭 뚫린 하수구를 건너지 못해 주저주저하고 있으면 간식을 들고 이리 와를 해서 간신히 넘어오곤 했었다. 그러던 별이가 벌써 7살이 되었으니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하긴 뭐 큰아들이 스무 살이 되고 둘째가 중학생이 되는 날이 올 줄도 그땐 몰랐다. 이러다 보면 금방 둘째가 스무 살이 되고 막내 공주님이 별이 나이가 될 날도 오겠지 싶다.
다음 공주님은 꿈이다. 최고로 멋진 하늘과 바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매일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오늘이 마지막인양 산책을 나가는 개들처럼 산다면 아마 인간들의 하루하루도 최고로 아름다운 날이 되지 않을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미술전을 한 동생과 함께 걸었던 정발산 뒷산도 참 좋았다. 오늘 참 최고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