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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 May 05. 2024

편지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진심을 전하는 방식 

결혼식에 가면 늘 눈물 버튼인 식순이 있다. 주인공들의 입장도 아니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도 아니고 바로 축사 시간이다.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 대한 회고와 쉽게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모두 읽을 수 있어서일까. 안녕, 누구야로 시작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축사일지언정 읽는 이의 목소리가 떨려올 때쯤 어김없이 울컥하고 눈물이 고인다.  


편지를 받는 것도 좋아하지만 쓰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받아본 기억도 써본 기억도 멀어졌다. 편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알 것도 같은 것이 편지엔 일상적인 언어가 없다. 평소 전하지 못한 말들을 적은 글이 편지다 보니 끈끈한 애정과 걱정 어린 조용한 응원의 말, 진심에 대한 고백이나 사과 정도가 편지의 본질에 가깝지 않나. 촌스러운 것일수록 진심에 가깝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래전 스쳤던 그 말이 마음에 꽤 오래 남았는데 지금 떠오른 걸 보면 편지를 잘 표현하는 문장 같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제일 가까운 사람이자 소중한 사람에게 미성숙한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고 있다는 것인데 이 고민을 긴 시간 촘촘히 들어준 친구의 조언이 바로 편지 쓰기였다. 매일 보는 사이에 편지를 쓱 건네는 게 참 사람 마음을 간지럽게 하지만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서로의 일상을 낱낱이 알다 보니 가끔은 비일상적인 언어로 진심을 적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래도 역시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지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다시 편지를 떠올리게 된 건 가족 때문이었다. 흔한 남매들이 그렇듯 나에게도 데면데면한, 엄마 아들 정도로 느껴지는 남자 혈육이 있다. 최근에 다시 혼자가 되어서 본가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가 물보다 진해서인지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지 집안일을 하다가도 문득 신경이 쓰이고 영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역시 전화로든 메시지로든 도저히 담백하게 위로를 전할 정도의 사이조차 아닌 것 또한 사실이었다.


주말이라 들른 본가에서 혈육의 얼굴을 보고 나니 더 마음이 안 좋아졌다. 우선 당장에 필요한 짐만 옮겨놓은 모양이 임시적인 삶의 불안을 그대로 담고 있었고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캐리어와 옷장도 없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옷가지들이 마음을 어지럽고 불편하게 했다. 애꿎은 엄마한테만 영문을 캐묻다가 왔는데 사실은 듣고 싶은 말도 많았고 해주고 싶은 말도 많았어서 별 대화없이 돌아온 게 계속 찝찝했다.

안 좋은 것이 떨어져 나간 것이니 이별은 좋은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고 안될 인연을 오래 붙잡는 것도 못할 짓이니 잘 된 일이라 말해주고 싶었다. 인생에서 큰 일을 겪고 있으니 이번만큼은 이 말을 혼자 삼키는 대신 편지를 써보기로 한다. 

최대한 미사여구 없이 촌스럽게. 내 방식대로. 새 출발을 응원하는 진심을 가득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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