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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 May 12. 2024

일상마저 꾸밈노동이 필요한 시대

오프라인의 경험이 진짜 취향을 만든다고 봅니다

여행을 떠나 석 달 동안 인터넷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냈더니 강렬한 금단 증상을 넘어 해방감과 몰입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다. 이마저도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야기인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나 또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필요성과 경험,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그간 많이 접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감옥이니 어플 일시 삭제 같은 방법들은 너무 금방 깨질 가능성이 커 보였고 인터넷이 안 되는 환경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은 현실성 없는 어려운 과제 같았다.


그렇다. 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온라인일 정도로 나 또한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 중 하나다. 오프라인 공간에서조차 스토리를 업데이트하거나 피드에 올리고 싶은 느낌의 공간을 찾을 때도 있으니 온오프의 경계가 흐려질 정도로 온라인의 절대적 지배를 받는 일상을 살고 있다. 어렵게 잡은 책을 읽다가도 어느새 인스타 스토리를 넘기고 있고 요리 레시피를 검색하다가 티셔츠를 결제하게 되는 일 정도에는 이제 꽤 무뎌진 편이다. 피드에 올리고 싶은 이미지의 공간을 발견하고 기어코 찾아가 전경을 촬영하는 것까지는 경험의 영역으로 인정하겠으나 내가 정말로 견디기 힘든 것은 '보임'을 염두에 두고 일상을 꾸미려고 하는 나를 자각할 때다.


일상을 콘텐츠 속에서 찾고 끊임없이 그걸 전시하는 것이 지겹다. 안 하면 되지 않나. 맞다. 그런데 콘텐츠 관련 커리어를 이어나가다 보니 잘 키워놓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하나 정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덕목인 건가 싶을 때, 언제부턴가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SNS마저 평가요소가 되어버린 현실이 가끔은 숨이 막힌다. 취향까지 평가받아야 하는 기분이 꽤나 불쾌하고 일상조차 콘텐츠화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든다. 이럴 때는 정말 이미 브랜드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나 자기 PR이 필요 없는 천재들이 부럽다.


크리에이터가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비창의적인 사회가 된 것 같은 것은 나의 기우일까. '힙'한 곳에서 '핫'한 메뉴와 '트렌드'를 소비하며 비슷한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은 과연 시대의 감성인 걸까. 우연에 의한 선택은 거의 없어지고 검증에 의한 소비만 경험하게 될 때 참 씁쓸하다. 요즘 특히 SNS에 잠식된 일상에 경계가 심해져서인지 오염된 것 같은 이 기분을 빨리 씻어내고 싶다. 그렇지만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내가 도대체 얼마나 더 지긋지긋해져야 끝끝내 SNS 해방일지를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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