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거
3년 전 나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부동산 물가의 거대한 벽을 처음 마주했다. 2021년 가을, 대선을 앞두고 집값이 미친 듯이 치솟아 있을 때, 지금은 전세가가 2억이나 떨어진 이 집을 급하게 계약하게 되었다. '선거가 끝나면 대출 정책이 바뀔 것이다', '신혼부부 혜택이 없어질지 모른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다' 별의별 말들에 휘둘려 2억이나 떨어질 줄도 모르고 신축 오피스텔이라며 좋아했던 과거의 나.
이 집에서 열심히 모아서 집을 넓혀가자고 야무진 꿈도 꿨는데 정확히 2년 뒤 내 예상과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맞이했다. 재계약 시기가 도래해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다가 2억이나 떨어진 걸 보고 전세가를 조정하기 위해 집주인에게 전화를 드렸다. 임대사업을 접었으니 전세금은 돌려줄 수도 없고 대출 연장에 대한 이자도 지원해 줄 수 없으니 전세금은 보증보험을 통해서 받으시라. 그 태도가 너무 뻔뻔하고 당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먼저 전화하지 않았더라면 이 집이 경매로 넘어간 줄도 모르고 계속 살다가 봉변을 당했을지 모르는데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단어를 쓰며 전화를 받아주는 것을 고맙게 알라는 식의 태도. 더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나는 집주인과 마음껏 싸울 수도 없었다.
처음 주택공사에 심사를 넣고 집주인과 계약을 만료시킨 게 작년 12월 말쯤이었는데 5월 말이 된 지금에서야 심사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은행에 예외연장 신청을 하고 여기저기 서류를 떼다가 법원을 드나들며 불안에 떨던 지난한 세월이었다. 희한하게 떠날 집이라고 생각하니 천천히 집과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옥상에 올라가 보는 노을도 좋았고 벚꽃 피는 계절에 대로변에 내리는 벚꽃비도 아름답다 생각했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집에서 남편과 싸우는 일도 많아졌다. 심사가 완료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상 이상의 더 큰 스트레스가 쌓였다.
새로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는 무조건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신변의 안전 말고 그 집은 법적으로 안전한 매물인가. 집이 얼마나 쾌적한가 보다 서류상 얼마나 깨끗한가. 부동산에 무지했던 나는 또다시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본주의적인 언어를 열심히 익혔다. 허위와 편법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주거에 대한 욕망과 불안은 동시에 깨어나 나를 집어삼켰다. 하루빨리 주거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망이 어떻게 해서든 집을 소유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번졌고 정직하게 돈을 모아 언젠가 집을 사려했던 과거의 생각을 하수로 느껴지게 했다. 영끌 매매에 부정적이었던 내가 매매로 잠시 눈을 돌려보니 갭투자는 당연하게 느껴지고 투자가치가 있는 집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에 혈안인 사람들도 이해가 되었다. '살' (living) 목적이 '살' (buying) 목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평생 번다해도 명함도 못 내밀 100억짜리, 200억짜리 건물을 너도 나도 샀다 팔았다 하는 연예계에서 예능대부 이경규는 한 번도 재테크 목적으로 부동산을 산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다른 프로그램에서 언뜻 들었을 때도 대단하다 싶었는데 본인의 채널에서 밝힌 소신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게스트로 출연한 후배 황제성이 계속 의문을 품고 경제적 자유를 어떻게 누리는 것인지 묻자 그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려면 그전에 정신적 자유를 누려야 해. 네가 물질적 탐욕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답했다. 너무 맞는 말씀이라서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올바른 대안을 찾아보기도 전에 이 비정상적인 부동산 흐름에 일조할 뻔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정직하게 우리의 넥스트 리빙하우스를 고민해보려고 한다.
나 또한 경제적 자유보다 정신적 자유가 우선이기에 어쩔 수 없다. 생존의 당위성을 앞세우며 옳지 않은 흐름을 추종하는 것에는 역시 브레이크와 함께 알레르기가 돋으니 이 사회에서 부자가 되기엔 탈락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