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언젠가 꼭 한 번은 찾아오는, 그 밑바닥의 경험

by 서수

봄 학기 프로포절은 이미 짐작한 대로 탈락이었다.


봄 학기 프로포절이 통과되었으면 나는 가을 학기에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진행하기에는 써 놓은 글도 없고 공부도 부족했으므로 이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가을 학기 프로포절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텍스트도 더 다양하게 찾아서 읽어보고 내가 선택한 철학자의 모든 저서를 대출했다. 그의 사유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초기 저서부터 섭렵하고자 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순탄하게 텍스트를 읽고 논문의 가닥도 어느 정도 잡아놓으면 논문이 술술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만해져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철학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는지, 이 사람의 이론에 있어서만큼은 석사 수준에서 어쨌든 내가 제일 공부를 많이 했으니 내가 하는 말이 다 맞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내 논문이 이런 식으로 구성되고 서론, 본론, 결론에서는 이러이러한 내용이 들어간다고 간략하면서도 내 논문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하게 써야 하는 프로포절은 점차 이 철학자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단어들로 채워져 갔다.

문제는 내가 혼자 공부하다 보니 나의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 글이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이게 어느 정도로 어려운 건지 쉬운 건지 등을 가늠할 수 없었다. 혼자 공부한 시간이 오래될수록 주변의 누군가와 내 논문에 대해, 이 이론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의견을 나눌 시간이 부족하였고 그렇게 내 글은 내 안에서만 숨 쉬고 있었다. 물을 벗어나면 숨 쉬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나를 벗어난 글은 타인에게 가닿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점은 내 주변에는 내가 언제든 SOS를 칠 수 있는, 나의 문제점을 곧이 곧대로 지적해줄 수 있는 박사과정 선배 언니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는 이제 판단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자, 언니들에게 도움을 청하곤 나의 수정된 프로포절을 일단 자신 있게 들이밀었다. 읽어봐 주고 문제점을 가감 없이 말해달라고. 사실 나는 언니들이 잘 썼다고 칭찬해줄 줄 알았다. 언제 이렇게 다 공부를 했냐고, 이번 프로포절은 100% 통과될 것 같다고.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놀랍도록 냉담했다.


"너 이거 다시 써야 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이렇게 쓰면 다음 프로포절 통과 못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언니들의 따끔한 질책 이후 다시 읽어보니 오만함이 가득한 글이었다. 독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 지식에 취해 온갖 어려운 문장들로 가득 차 있던,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던 글이었다. 나는 오히려 쉬운 글을 쓰게 되면 혹여 유치해 보일까 걱정했는데 내가 공부한 내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한들 그것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는 테크닉 자체가 더 어려운 일이었고 그 훈련을 석사학위논문에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내용이니 어렵게 써서 뭔가 있어 보이는 글을 쓰고자 했던 나의 순진무구함은 여실히 드러났다.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스스로에게 커다란 실망감이 찾아왔다. 그리고 든 생각, '나 이제 큰일 났다.'

프로포절을 쓰는 것도 시간을 꽤 소비하는 일이라 오랜 시간 동안 고치고 또 고치면서 작성한 것이었는데, 처음부터 아예 다른 문장으로 다시 써야 한다니 이건 두려움을 넘어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진공 상태에 빠져든 것 같았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글만 어렵게 쓴다고 논문이 될 줄 알았던 오만함을 스스로 꾸짖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은 또다시 시작되었고 공부한답시고 연구실에 처박혀 공부만 했던 6개월이 넘는 그 시간들이 무용한 것처럼 느껴졌다. 우울감이 나를 사로잡았고, 내 기분은 끝도 없이 내려갔다.


그렇게 나는 바닥을 경험했다. 그 전에도 바닥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말했다던 권태란 이런 것일까, 던져져 있기에 살아는 가되 내 존재의 짐이 참으로 무거운 날이었다.





keyword
이전 05화환희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