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득하기
봄 학기 프로포절에서 떨어진 뒤에 가을 학기 프로포절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였다. 원래도 유명한 곡이었지만 당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의 ost로 편곡되면서 더욱더 대중적인 노래가 되었다. 나는 이 노래를 남편이 집을 비운 낮 시간에 홀로 밝은 방의 컴퓨터 앞에 앉아 들으며 프로포절 발표문을 작성하곤 했다. 집 앞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며 시끌벅적하게 노는 소리, 택배를 배달하려고 배기음을 내며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오는 봉고차 소리, 고물 컴퓨터나 티비 등을 매입한다는 내용의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골목길을 후비고 다니는 트럭 소리 등으로 가득 차서 나에게 조용할 틈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소음들 가운데서 나는 더 고요하고 적막하게,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걱정 말아요, 그대>의 가사는 이렇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여기서 나는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부분을 들으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가사는 너무나도 모순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대의 슬픈 얘기들을 그대 탓으로 돌리는 것이 어떻게 훌훌 털어 버리는 행위가 될 수 있는지. 오히려 남의 탓으로 돌리면 더 가벼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모르는 남에게 모든 짐을 지워 버리고서야 나는 그저 순진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노래하는 자는 그대의 슬픈 이야기를, 그 인생의 짐을 그대 탓으로 여기라고 했는지, 스스로 떠안으라고 했는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이 슬픔이 오로지 내가 나에게 지우는 짐 같아서, 그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는데 괜히 내가 스스로 바다에 들어간 것은 아닌지 노래를 들으며 자책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누군가에게 논문 쓰는 게 힘들다고 백번 얘기해봐야 그거 어차피 너 좋으라고 네가 선택한 길 아니었냐는 물음이 되돌아올까 봐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티를 내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며 흘린 나의 눈물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자기연민이 뚝뚝 묻어나 있는 것이었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당장 다음 주에 발표할 논문 프로포절 발표문을 수정하면서 결론을 작성하다가 어떤 포인트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나는 또 펑펑 눈물을 쏟았다. 서러워서였을까, 기표들이 만들어 낸 기의들을 확대 해석함으로써 감동이 있어서였을까. 감정이란 이리도 한심하면서도 아 프리오리 하다.
교수님, 같은 전공의 박사 선생님들, 박사과정 선배들, 석사과정 선배들, 후배들 앞에서 치른 이번 프로포절 발표는 지난번 박사과정 선배 언니들이 지적해준 사항들을 반영해서 목차와 내용을 전폭 수정한 버전이었다. 구성은 더 단순해졌다. 논문의 내용보다는 논문의 주요 뼈대, 즉 주제의식이 돋보이도록 다듬었다. 프로포절 단계에서 불필요한 어려운 용어들은 거의 제외하거나 쉬운 말로 대체하였고, 논문의 목표와 주제를 간략히 서술하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왜 이러한 목차를 구성하였는지, 1장과 2장과 3장에서는 어떤 내용들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요약하여 서술하였다.
그리하여 이 목표를 이루었다고 가정된 본 논문이 가질 의의가 무엇인지를 결론에 서술하면서 내가 이 주제를 선택하고 이 이론을 공부하게 된 이유가 진정성 있게 전달될 수 있도록 임팩트 있는 마지막 문장으로 프로포절을 끝냈다. 사실 이 마지막 문장은 내가 매우 심혈을 기울인 것이었는데 내 진심이 온전히 묻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것이었고,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알싸한 찌릿함을 느꼈다. 이는 내가 나를 설득했을 때 일어나는 신체적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에서 낭시의 이론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라는 요청에 내가 얼마 전에 겪은 일을 예시로 들어 설명하였다(논문일기 "환희의 순간"편 참조). 발표를 하면서, 그리고 질의에 대답하면서 나는 이번 프로포절에 통과할 것 같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말을 하면서 나 자신을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공공미술의 영역에서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주민 협동 프로젝트 정도로 굳어진 공동체 미술에 대한 논의가 왜 여전히 필요한가에 대해서, 낭시의 이론을 토대로 한 공동체 미술의 미학이 지금 이 시대에 어떤 함의를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그 순간만큼은 머리를 쥐어짜면서 고민했고 탐구했으며 어떻게든 그 문제를 풀어내고자 몸부림쳤다.
교수님은 내 논문의 내용보다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셨던 것 같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나의 삶과 전혀 무관한 글이 아니라는, 이 어려운 철학 이론을 내 삶에서 나름의 해석을 하려고 했던 나의 절절한 노력들을 봐주신 것 같았다. 그것은 냉철하고 논리적인 연구자의 태도로 보기에는 힘든 것이었지만 석사 과정에서나 볼 수 있는 거칠고 투박한, 어떤 절규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마지막 프로포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