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몸으로 수행하기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 앉아만 있는 것은 과도한 흡연보다 몇 배는 더 건강에 해로운 일이라는 게 어느 옥스퍼드 연구팀의 연구결과로 밝혀진 이상, 이대로 내 수명을 단축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논문으로 내 돈과 시간을 잃었는데 건강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요가학원을 등록하였다.
우리나라에 요가가 들어온 지 10여 년이 넘게 흐른 것 같다. 내가 십수 년 전에 요가라는 것을 배우러 처음 학원에 갔을 때는 데코레이션과 분위기만 대충 인도스럽게 꾸며 놓고 거의 스트레칭에 가까운 요가를 가르쳐 주었었다. 요가를 해서 건강해진다는 느낌보다는 잘 되지도 않는 자세를 억지로 낑낑거리면서 하다가 끝날 때쯤에 스트레스성 두통의 증상을 느끼고 나오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요가는 점점 발전하여 이제는 동네 요가학원에서도 머리 서기 자세 같은 고난도 자세를 가르치는 시대에까지 오게 되었다. 이 말인즉슨, 내가 등록한 요가학원에서 첫 시간부터 나 같은 초보자에게 물구나무서기를 가르치고 바로 시켰다는 것이다.
이 요가학원은 어느 상가 건물 6층에 있는 작은 학원이었는데도 등록한 첫날부터 이제 요가가 옛날의 그 요가가 아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일단 운동할 때 복장은 무조건 요가복을 착용해야 한다고 했다. 위아래로 딱 붙는 요가복을 입어야 운동하면서 잘못된 자세를 선생님이 보고 바로바로 고쳐줄 수 있다고. 그리고 요가매트 역시 얇고 비닐로 된 매트는 미끄러워서 운동 중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두껍고 재질도 좋은 것으로(당연히 비싼) 무조건 구매를 해야 한다고 했다. 뿐 아니라 이것은 선택사항이지만, 매트를 짚은 손이나 발에 땀이 나면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 요가매트 위에 요가타월을 깔고 하는 것이 좋다고도 했다.
나는 단순히 스트레칭 정도 할 요량으로 요가를 등록한 것이었는데 이건 시작할 때부터 들어가는 돈에, 요가 등록비용 자체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근처에 마땅히 갈 만한 곳도 없고 건강에 투자하는 것이었으므로 큰 맘먹고 등록을 했다. 무엇보다 나는 하루에 몇 분이라도 논문 생각으로부터 머릿속을 비워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요가는 내가 기대한 심신의 안정과 고요한 균형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이 학원에서는 시작 첫날부터 초보자에 대한 배려 없이 원장 선생님의 어떤 신념으로 쉬운 동작은 물론 고난도의 동작까지 거침없이 가르쳤다. 그 신념이란, 맨날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같은 동작만 반복하면 절대 발전이 없으며, 특히 몸을 쓰는 운동에 있어서 자기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겁을 내는 동작을 한 번이라도 성공시키면 운동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원장 선생님의 그 설명을 들으니 그것도 맞는 말이구나 싶어 나는 심각한 수준의 몸치임에도 불구하고 가르쳐주는 동작을 미숙하게나마 따라 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요가가 이런 운동이었다니 하는 어떤 충격과 근육통이었다. 게다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다가 시작하니 운동을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얼굴색이 더 어두워지고 체중은 줄지도 않으면서 얼굴만 초췌해졌다.
헬스장이나 수영장 같은 운동시설에 등록하면 으레 그렇듯 운동을 오래 해서 잘하는 사람들이 맨 앞줄에서 운동을 한다. 나는 초보자인 데다가 운동에는 영 자신감이 없어서 항상 맨 뒷자리나 선생님의 눈을 벗어나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원장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나를 콕 집어서 맨 앞자리, 그것도 원장 선생님을 마주 보는 바로 앞자리로 오라고 명령(?)하셨고, 나는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그 자리로 터덜터덜가는 것이었다. 당시에 <프로듀스 101>이 방영 중이었는데 마치 나는 김소혜 양처럼, 댄스 부분에서 가장 떨어지는 실력을 갖춰서 숨고 싶지만 무서운 안무 선생님에 이끌려 억지로 맨 앞자리에 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나는 점점 요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10여 년 전처럼 스트레칭만 하는 요가였으면 그 매력을 전혀 모른 채 시간을 보냈을 것이었으나, 머리 서기 자세, 전갈 자세, 까마귀 자세 등등 그동안 해보지 못한 어려운 동작들을 배우면서, 그리고 이 동작들을 너무나 아름답게 수행하시는 아줌마들을 보면서 나도 하나씩 성공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빈야사, 수리야, 아쉬탕가 같은 요가의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나에게 요가는 더 이상 정적인 운동이 아니라 그 어떤 운동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동적인 운동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저 동작들은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어 선 자세에서 앞으로 숙이고, 다운독 자세에서 로우 플랭크 자세로, 다시 다운독 자세에서 런지 자세로 일정한 호흡을 통해 쉼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기에 숙달된 선생님들이 하는 동작들을 보고 있자면 하나의 춤 같기도 했다.
이런 자세들을 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땀을 갑절로 흘렸다. 왜냐하면 원래 땀이 많기도 하지만 몸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이었다. 요가를 오래 하신 분들은 근육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이었으나 의자에 앉아 책만 읽은 내 비루한 몸뚱이야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플랭크 자세 하나만 해도 나는 내 작은 손과 발에 거대한 몸뚱이를 지탱해야 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1시간가량의 요가가 끝나면 내 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요가를 하면서, 그리고 그 어려운 동작들을 억지로라도 하게 되면서 내 몸은 점차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굳었던 척추가 펴지고 비뚤었던 골반이 제자리를 찾아갔으며 굽은 어깨가 조금씩 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실제로 나는 요가를 하고 난 뒤부터 키가 3cm 자라 있었음을 건강검진을 통해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요가를 하면서 나는 1시간 동안은 논문 생각은 아예 할 수 조차 없었다. 운동 자체가 워낙 힘이 들어서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변해가는 내 몸을 보면서 요가를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는데 논문 이외에 어떤 것에 대해서 내가 열의를 보인 것은 논문을 쓰러 학교에 오고 난 뒤부터 요가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요가와 논문이 어떤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우리 눈에 익숙하지만 요가의 자세들은 사실 뒤틀리고 꼬여있어 괴상하게 보이는 자세들이 많다. 이것은 몸을 극한으로 불편하게 해서 수행하고자 하는 고행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렇다. 고행. 이 단어보다 논문에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고대 사제들이 스스로 몸을 괴롭게 하는 고행을 통해 어떤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한 것처럼, 스스로 선택한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학교에 틀어박혀서 속세의 관심들을 어느 정도 끊고 어떻게든 논문을 쓰고 졸업하고자 하는 현대적인 고행의 길을 가는 자들. 물론 다른 점이 있다면 사제들은 이를 통해 어느 정도 내면의 평화를 얻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신체와 정신이 모두 고통을 받는다는 점이랄까.(이 부분을 생각하면서는 좀 슬펐다.)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맨 몸으로' 수행한다는 점일 것이다. 요가는 헬스나 필라테스와 달리 어떤 장비가 필요하지도 않고, 수영장처럼 물이 필요하지도 않다. 오로지 맨 땅에서 맨 몸으로 하는 운동인 것이다. 맨 땅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 유산소가 아닌 무산소 운동일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무게를 운동 수단으로 이용하여 근력을 사용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운동의 양이 더 많았던 것일 수도 있다. 논문도 여러 가지 실험 장비와 데이터, 수많은 원서들 등에 기댄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학문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맨 몸을 던지는 행위와도 같다. 실험을 하나 하더라도 그 모든 설계는 내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실험이 왜 필요하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연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는 전부 나의 판단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나의 전공은 인문학이었으니 현상이라는 실체를 수많은 말과 글로 대체하여 분석하고, 내가 차용한 학자들의 글을 파악하여 내가 해석한 말과 글로 다시 변주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마치 엄청나게 몰아치는 폭풍우를 맨 몸으로 맞으면서 앞이 보이지 않아 나의 온 감각을 동원하여 오직 나의 판단이 이끄는 대로 한 발자국씩 느리게 전진하는 것과 같았다. 결국 나의 몸을 괴롭게 하면서도 내가 선택한 길을 느릿느릿 전진하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인도의 사제들이 얻은 그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작은 깨달음이 내 안에 임재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 작은, 한갓된 깨달음을 붙잡고 우리는 논문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