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를 뭘로 잡지? 주제 선정에서부터 길을 잃다
보통 우리 전공에서 석사학위논문은 미학 내의 세부 전공, 세부 예술 장르에서 주축이 되고 있는 이론(가)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주된 양식이다. 그러려면 미학 이론을 시대와 언어에 상관없이 충분히 배워야 하고, 여지없이 플라톤에서부터 줄 세우기를 시작한다.
세부 전공에 따라 고대의 이론가를 소환할지, 중세의 이론가를 소환할지, 동시대의 이론가를 소환할지가 결정된다. 나의 경우는 동시대 미술 현상들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틀 짓는 전공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현대의 이론가를 선택하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하다.
논문의 주제를 잡을 때 내가 흥미를 느끼는 이론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실제적인 예술 현상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문제는 양자 모두 각각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서 주제를 잡는 단계에서부터 그 망망대해에 빠져 아예 방향을 상실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설프게 알고 있을 때가 가장 용감하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할 때는 '상상력'이라는 키워드에 꽂혀서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주제를 잡고 연구를 하겠다며 혼자 들떠 있었고, 어떤 교양서의 제목이었던 '상상력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를 읽고는 이론가는 바슐라르로 정한 다음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원에 들어오니 바슐라르는 불문학에서 더 많이 다루는 이론가였고, 그마저도 1980년대 이후로는 논문이 거의 나오지 않는, 소위 한물 간 이론가였다. 그리고 바슐라르 자신도 상상력 이론을 '시'에 주로 적용했지 시각예술에 적용하진 않았으니 그 둘을 내가 잇는다 하더라도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고, 그 둘을 아주 매끄럽게 이을 정도로 나는 바슐라르를 많이 공부하지 않았었다. 그러자 바로 초조해졌다. 나에게는 플랜 B가 없었다.
나는 입학 후 2년간 코스웍을 한 뒤 1년 동안은 수업 조교니 연구원 알바니 하면서 학교에는 붙어 있었지만 망망대해에 빠져 이 주제 저 주제 생각하며 저울질하다 방향키를 아예 놓쳐버리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길을 잃는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의욕과 열정으로 주제를 선택한다. 앞서 말했듯이 나의 경우에는 그 키워드가 상상력이었다. 그래, 트렌디한 주제가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것에 대해 써보자. 이 논문을 통해 뭔가 대단한 걸 이루고 싶은 치기 어린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걸 내가 하자니 이런 내용으로 개설된 수업도 없고, 이 이론이 지금 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이유는 어찌 됐든 동시대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므로 시의성도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나 혼자 밀고 나가자니 주위에 같이 스터디할 사람도 없는 데다 석사학위논문인데 주제가 거대해서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 점차 확신이 사라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업을 들으면서 그 수업에서 다룬 주제들을 내 것으로 심화시키는 것인데 딱히 확 당기는 게 없었다. 그다음 좋은 방법은 지도교수님께 여쭤보는 것인데 교수님의 관심사와 내 관심사가 일치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주신 주제와 이론으로 다시 공부하기엔 너무 늦었다. 시간은 자꾸만 흐른다. 그다음은 박사과정 선배들이나 석사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주제 자체를 구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논문을 써서 너무 늦지 않게 졸업할 것인가 위주로 물어본다. 선배들은 이미 졸업한 사람들이 어떤 주제로 어떤 목차로 어떤 구성으로 썼는지를 참고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석사학위논문이니 욕심내지 말고 내가 공부한 것을 잘 정리하고 내가 고안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 위에 살짝만 얹으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선배들의 논문을 본다. 그런데 그 논문은 이 모든 고민의 결과들이 정돈되고 정제되어 나온 결과물이므로 시작 단계의 내가 봤을 때는 넘사벽이다. 어쨌든 선배들이 이렇게 쓰기 위해 거쳐왔던 그 고민과 고뇌의 시간들을 나라고 단번에 건너뛸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 거저는 없다.
사실 주제를 정하는 데에 이거 저거 다 따져가며 고민하느라 허송세월을 보냈던 이유는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시작도 전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전공에서 코스웍 기간 포함 3년 만에 졸업하고 나가는 사람은 교수님들도 인정하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보통 미니멈 5년을 잡는다. 석사학위 취득에 걸리는 시간이 5년이라니. 코스웍 2년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논문을 쓰는 데에만 3년을 잡는다. 하지만 이 3년에는 논문 심사 학기가 포함되어 있고 심사 학기가 오기 전에 대부분 논문을 거의 완성해 놓으므로 이 학기를 제외한다면 2년 6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이 2년 6개월에는 (이미 확실하게 서론-본론-결론까지 결정된) 내 논문 주제에 대한 교수님의 피드백과 선후배의 피드백 기간이 포함되어 있고 내 앞에는 같은 지도교수 밑에 아직 졸업하지 않은 선배들이 산적해 있으므로 내 차례를 기다리는 기간도 포함되어 있다. 이 기간이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이다.
그렇다면 남은 1년 동안은 무얼 하느냐. 논문이라는 긴 호흡의 글을 쓰기 위해서 스스로 작성한 읽어야 할 텍스트 목록이 있을 것이고, 이 텍스트들을 읽고 분석하여 내 생각을 다듬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은 사실 많이 빠듯하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한 이론가가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텍스트는 주로 원서를 찾아 읽어야 하고, 그것이 운 좋게도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번역이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은 다시 원서를 읽게 되어 있다. 왜 역자가 그 용어를 이 한국어 단어로 번역했는지, 더 적절한 번역어는 없었는지, 치명적인 오역은 없었는지 등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시간. 그런데 그 이론가가 텍스트가 어렵기로 정평이 난 데리다나 들뢰즈 같은 사람이라면? 단행본 한 권만 해도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집필한 하이데거라면? 이 모든 걸 떠나 현대 이론가라 할지라도 이들이 자신의 이론을 위해 차용한 또 다른 이론가가 플라톤이나 칸트 혹은 마르크스라면? 어디서 뭘 차용했는지도 확인해봐야 하니 파도를 타고 타고 또 타면 결국 또다시 망망대해 한가운데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모든 과정을 선배들을 통해 익히 듣고 보고 알고 있던 나는 그 시간을 줄이고 싶어도 줄이지 못하는 내 무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겁을 먹은 것이다. 5년도 짧은 거라니. 아니, 5년은 고사하고 나는 졸업 자체를 할 수 있을까. 논문이라는 것을 감히 내가 쓸 수 있을까. 읽어야 할 텍스트는 쌓여만 가는데 읽기만 하고 언제부터 쓸 수 있을까. 나는 왜 대학원에 들어왔을까. 나 같은 게 왜.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싶다. 그런데 중간에 포기한 선배들이 결국에는 다시 들어와서 연구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다. 학교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완성되지 못한 논문은 망령처럼 떠나지 않고 따라다닌다. 언제까지? 논문을 완성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