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에서 영혼이 탈출 중인 나
바야흐로 그때는 험블이가 생후 6개월 정도 되었던 때였다. 남편은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서 2주간 합숙 연수를 하느라 나는 혼자 제리와 험블이를 돌보고 있었다. 그 무렵 험블이는 아기들이 흔하게 걸리는 장염에 걸려서 분유를 먹으면 바로 분수토를 했고, 물이나 분유를 먹는 즉시 콧물 같은 점액질 변을 수시로 쌌다. 나는 초보 엄마였기에 그 시기를 아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냈고, 아기 장염 증세를 검색하느라 매우 바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원래부터 슬개골이 좋지 않아서 이미 양쪽 슬개골을 모두 수술했던 제리는 그즈음에 다시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수술한 부위가 불편해진 듯했다. 그래서 제리는 의지할 대상이 나밖에 없으므로 나에게 하루 종일 붙어 있었고, 나는 험블이 보랴 제리 케어하랴 정신이 없었다. 아, 정신이 없었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짜증이 났다. 험블이를 안고 있으면 제리는 나에게 와서 자기를 안으라며 앞발로 내 팔을 사정없이 긁어댔다. 험블이가 낮잠을 자느라 그나마 나에게 자유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에도 자기를 안으라며 짖고 낑낑댔다. 나는 아주 정신이 나가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다 사단이 났다. 저녁 시간이었는데, 험블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다시금 시작된 설사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약을 먹이고 설사 분유를 검색하고 있는데 엄청나게 큰 소리로 제리가 "깨갱개애개애애개앵" 하고 짖는 것이었다. 상태를 보니 아예 슬개골이 빠진 것 같았다. 제리를 한쪽 다리를 바닥에 딛지 못한 채 깽깽 걸음을 하고 있었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때 남편이 있었으면 제리의 빠진 슬개골을 직접 끼워 주었을 텐데(수술 전에 슬개골이 하도 많이 빠져서 남편은 이미 슬개골 끼우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하지 못했다. 험블이는 울지, 제리도 울지, 나는 눈물은 안 났지만 이미 마음속이 홍수가 되어 있었다.
아픈 험블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동물병원에 가는 것은 할 수 없었기에 당황한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근처 사는 친정 아빠에게 콜을 했다. 나중에도 쓰겠지만, 친정은 계속 개를 키워왔기 때문에 개와 관련된 일이라면 부탁하기가 매우 수월했다. 나는 아빠에게 응급이 가능한 근처 동물병원을 알려주고, 제리를 데리고 가서 슬개골을 끼워 달라고 부탁했다. 아빠는 즉시 우리 집으로 와서 제리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셨고, 얼마 후에 동물병원 영수증과 함께 제리를 집에 데려다주셨다. 슬개골 한번 끼워주는 데 들어간 응급 비용은 44,000원.(후덜덜...)
슬개골을 끼우고 온 세상 겁쟁이인 제리는 그 후로도 계속 나에게 붙어 있었고, 나는 험블이를 재우고 나서야 제리를 안아 줄 수 있었다. 하필이면 이런 일이 남편이 없는 사이에 벌어지다니. 역시 애개육아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 제리는 몇 년 전 슬개골 수술을 하면서 박아 둔 철심이 잘못돼서 다시 탈구가 된 것이었고, 몇 달 뒤에 다시 슬개골 재수술을 했다. 그런데 제리가 수술하게 될 당시에 남편도 복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