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극복의 산 증인'
찰스 디킨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유산』, 『크리스마스 캐롤』, 『올리버 트위스트』등으로 잘 알려진 찰스 디킨스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트라우마를 마주한 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과연 그에게는 어떠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일까?
시간을 돌려 찰스 디킨스의 소년 시절로 가보자.
경제관념이 부족해 빚을 지고 채무자 감옥에 갇힌 디킨스의 아버지는 소년 디킨스의 삶에 커다란 상흔을 남기게 된다.
따뜻한 집이나 학교가 아닌 구두약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던 열두 살 디킨스가 마주했던 하루하루는 가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으로 자리 잡았을 터.
작가로 성공해 경제적 기반을 다진 후에도 본인이 일했던 공장 근처 지역에는 발을 들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때의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충분히 실감할 수 있으리라.
"학식 있는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희망이 내 가슴속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고,
어떤 말로도 내 영혼 속에 숨겨놓은 고뇌를 표현할 수 없었다."
훗날 그가 토로한 것처럼 가난한 자에게 더욱 가혹했던 시대적 현실은 소년의 희망을 무너뜨리고, 하루하루의 삶을 고뇌의 연속으로 만들었다.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데이비드 코퍼필드』등과 같이 디킨스의 작품에서 '고통받는 소년'의 이야기가 주된 소재가 되는 것, '빈곤층의 삶'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이루어지는 것 또한 이러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비단 디킨스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19세기 전반. 산업화라는 영광의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 아동 노동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는 그늘이 존재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장시간의 노동이 일상적이었으며, 머물 곳이 없는 하층민들은 줄에 매달려 잠시 잠을 청해야 했던 시대.
누군가에게는 '혁명'이었으나, 누군가에게는 '고난'이었던 시대를 디킨스는 온몸으로 겪어냈고, 시대의 희생자가 비단 자신뿐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구두약 공장의 어린 노동자에서 변호사 사무실 사환으로, 종래에는 신문사 기자로 일하게 되면서 고통받는 사회의 수많은 모습들을 접하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당시 발현되었던 '신 구빈법'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보이며 작품을 통해 풍자하기도 하는데,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 영감이 구빈법에 대해 '완벽하다'라고 표현하는 모습, 『올리버 트위스트』속 올리버가 겪었던 구빈원의 비인간적인 모습은 그 당시 신 구빈법에 대한 디킨스의 생각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그의 모든 작품의 기반에는 기자로서의 경험, 어린 시절의 아픔을 기반으로 한 서민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디킨스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계기가 되어준다.
디킨스의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공감을,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위로와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디킨스의 작품은 '성경'과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큰 사랑을 받으며 그를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게 된다.
이를 통해 디킨스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능력 또한 인정받으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존경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대중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그의 묘비에는 아래와 같은 추모의 글이 적혀있다.
He was a sympathiser to the poor, the suffering, and the oppressed; and by his death, one of England's greatest writers is lost to the world.
그는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자들의 동정자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은 영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하나를 잃었다.
소년 시절의 비참한 시간.
트라우마로 남았던 그 시간을 디킨스는 그저 외면하지만은 않았다.
그 시간을 바로 마주하고, 글로서 극복해 냈다.
나아가 더 넓은 사랑과 동정의 마음으로 자신의 과거, 그리고 많은 이들의 현실을 감싸 안으려 했던 그의 작품은 어린 시절의 자신뿐 아니라 고통받는 수많은 독자들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교육받지 못한, 책을 살 형편이 되지 않은 그 당시 영국의 서민들은 술집에서 디킨스의 이야기로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가졌으리라.
그리고 그 위로는 18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유효하다.
그는 어둡고 추운 대중들의 삶에 즐거움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의 발명가'라는 디킨스의 별명은 어쩌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려 했던 그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별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두운 현실을 걷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을 상처로 새기며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디킨스의 작품에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담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아는가. 그 누군가가 시간이 흘러 수많은 이의 마음을 다독일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