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각자의 다양한 삶만큼 흰색과 관련된 다양한 추억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 잡고 길을 걸었던 그날 입었던 흰색 셔츠, 큰 마음먹고 장만한 내 '첫차'의 흰색과 같은 것들 말이다.
오랜만에 찾은 본가에서 먹은 흰쌀밥의 따뜻함, 부모님의 흰머리를 보며 느껴지는 애틋함 또한 누군가의 흰색 추억이 되어있지 않을까.
때로는 순수함이나 깨끗함과 같은 이미지, 혹은 겨울과 같은 계절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흰색은 조금 더 특별한 이미지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다.
내게 있어 흰색은 전형적인 순수함과 깨끗함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떠올리게 하는 색인 것이다.
또 흰색은 힘든 하루였을지언정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에 힘을 싣게 해 주고, 문을 열면 한결같이 웃음을 짓게 하는 색이기도 하다.
아마도 8년 전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8년 전 내 마음속에 조심스럽게 자리 잡은 흰색 생명체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까지 커질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작고 연약했던 흰색 푸들인 '라떼'는 어느덧 빛나는 눈망울을 가진 예쁜 강아지로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며 다양한 흰색 추억을 남겨주고 있다.
함께 즐겼던 동네 산책길 벚꽃의 아름다움과 여름휴가로 갔던 평창의 시원한 공기, 일부러 골라 밟는 가을 낙엽의 바스락 거림과 처음 눈을 밟았을 때 보았던 어리둥절하면서도 신기해하는 라떼의 표정은 사계절의 기억을 따뜻한 흰색으로 물들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 라떼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계절의 변화였을지도 모를 이 시간들은 이제 조금은 더 특별하고 소중한 순간들이 되어가고 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내 무릎에서, 혹은 내 옆에 딱 붙어서 나를 쳐다보는 그 눈망울과 따뜻한 털의 감촉은 내게 특히나 더욱 진한 농도로 남아 있는 흰색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유독 밥을 잘 먹지 않아 애를 태울 때, 좋아하던 간식조차 거부해서 가슴 철렁 이게 하는 다소 서늘한 순간들이나, 밤새 잠을 자지 않아 인간들을 피곤하게 하는, 자주 겪고 싶지 않은 추억들도 있지만 말이다.
가끔은 신나는 산책 후에 흰색보다는 회색에 가깝게 변하기도 하는 이 사랑스러운 친구.
누구보다 예쁜 눈망울을 가지고 있는 이 친구와 함께 하면서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조금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랑받는 것의 기쁨만큼이나 사랑하는 것의 기쁨도 크다는 것.
누군가를 걱정하고, 안쓰러워하는 마음 또한 사랑의 한 갈래라는 것.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라떼와 함께 하고 있는 8년 동안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지금도 글을 쓰는 내 무릎에서 잠든 라떼는 나의 시간을 사랑스럽고 따뜻한 흰색으로 채워주고 있다.
새근새근 숨을 쉬며 자는 라떼의 얼굴을 보며 생각해 본다.
아마도 나에게는 흰색이 평생 따뜻함과 사랑의 색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더 많은 흰색 사랑과 추억을 남기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