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만난다면 1주일에 적어도 한 개의 글이 나오겠지만 욕심을 낸다고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섵부른 의욕으로 산 정상만 정복하려 하기보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느릿느릿하게 해보기로 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 책상에 앉는 훈련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당분간은 무엇이든 써 보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이 하루하루 달라지는거다. 어느날은 밑천이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단순히 산책하는 기분이라는 계획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리가 될만한 일정을 잡았다. 매주 3개의 글을 완성할 계획을 세웠다.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써보자는 심산이다. 글의 양이 늘어나면 그다음은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계획을 세웠으니 실천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스스로에게 주려 했다. 그리고 하루를 아침, 낮, 밤으로 나누어 일정을 만들었다. 아침에는 글을 쓰고, 낮에는 감각을 채우고, 밤에는 SNS에 업로드하며 글을 정리한다. 그렇게 글을 생산하고, 연료를 채우고, 다듬는 일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퇴사 후에는 시간의 제약이 없어서인지 한없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아뿔싸... 가족과 분담했던 일들이 모두 내 몫이 되었다.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를 위해 밥을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한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밥만이라도 안 한다면 하루의 절반이 내 것이 될 텐데.
잠시 억울하다.
그렇게 책을 읽기는커녕 쌓여가는 책을 안타깝게 바라만 보고 있다. 생활이 이렇게나 빨리 변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며 나를 다잡아 보지만 글 쓰는 틈을 내기란 쉽지 않다. 인생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여전히 확인하는 중이다.
그래 집은 아니야, 밖으로 나가자.
글쓰기 좋은 장소를 찾아 나섰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엔 롤링’의 작업 풍경을 떠올리며. 집과의 거리가 걷기에 무리 없고 규모가 적당한, 의자의 각도와 조명이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아 나섰다. 어느 날은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가 너무 힘들었고, 블라인드로 들어오는 햇볕이 강해 글을 쓰기 힘들었고, 의자가 불편했다. 그렇게 오늘도 여전히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마음은 궁극의 공간을 상상한다. 그래도 그렇게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에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김초엽 작가의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열림원’에는 작업실을 찾아 돌아다니는 작가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어차피 삶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이다. 아무리 애써도 내가 완벽한 작업 도구와 완벽한 작업실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인정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작업실은 그만 생각하고, 이제 일하러 가자.’ 완벽한 책상을 원하지만 그런 것을 찾기보다는 글을 쓰는 그 행위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글을 쓰는 그 행위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모임을 하던 중에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 글을 쓰세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쓰고 싶은 사람들의 절실함이 묻어 있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쓰는 사람은 쓰는 사람이 궁금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어디서 글을 쓰는지 그들의 하루가 궁금했다. 글 쓰는 사람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저는 아이들이 어려서 가족이 모두 잠든 후에 글을 써요. 쓰다 보면 새벽 2시를 넘기는 건 다반사죠. 어느 날은 새벽 4시에 잠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안타까운 건 그날이 모임을 하는 날이라는 거예요. 매일매일 쓰기의 시간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는 시간을 내는 거죠. 쓰는 모임이 없었다면 과연 제가 글을 썼을까 생각해 봐요.”
“저는 아침에 초고를 밤에는 퇴고를 규칙적으로 하려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낮 시간을 잘 활용하려 애써요. 시간을 안배해서 글 쓰는 틈을 먼저 만들고 그 외에 해야 할 일들을 배치하는 거죠.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저를 보며 가족들은 왜 그렇게나 열심히 써야 하는지 묻더라고요. 쓰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파하는 저를 보니까요.”
“저는 1일 3 카페를 한 적이 있어요. 한 곳에서 오랫동안 글을 쓰다 보면 너무 지겹고 지쳐서 그만하고 싶은데, 하루에 세 곳의 카페를 오가며 3시간씩 나눠서 글을 쓰니 힘이 좀 덜 들더라고요. 장소를 옮길 때마다 맛있는 카페 음료는 제게 주는 선물이고요. 꼭 써야 할 것이 있는 날에는 이런 방법도 활용해 보세요”
그들의 글에 어린 비화를 알게 되는 순간이다. 어떻게든 써내려는 마음이며 쓰지 않고 참석하는 날이 없게 하기 위한 고군분투다. 그들의 참전기는 침착하게 나의 상황을 다시 보게 해 준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기에 이른다.
‘내 시간을 빼꼈다고 생각하지 말자.
무사히 하루를 보낸 나를 칭찬하자.
그리고 담담히 오늘 하루를 보내자. 그리고 계속하자.’
덧)
나의 고등학생 시절 체력장이라는 체력검정 시험이 있었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몸이 공기를 가르며 앞으로 나가지를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공기가 이렇게나 무거웠나 생각했다. 공기의 밀도를 느끼며 이를 악물고 내 몸을 밀어내며 달렸는데도 100m를 무려 18초에 달렸다. 내게 글쓰기는 그날의 100m 달리기다. 도무지 앞으로는 나갈 수가 없고 뒤에서 보이지 않는 차가운 손이 나를 끌어 잡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