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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11. 2022

수족관

단편소설 5 화

 월요일은 새우였다.

 화요일은 우럭이었다.

 수요일은 대게였다.

 목요일은 넙치였다.

 금요일은 돔이었다.

 걸레 자국은 조제실 바닥에 흐름을 그렸다. 통로는 좁다랬다. 새우는 오고 가며 치였다. 등이 부지기수로 터졌다.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부피를 작게 차지하려 애썼다. 머물 자리가 없었다. 새우는 슬퍼했다. PTP(Press Through Pack) 포장을 챙기는 주였다.


 블리스터(Blister) 포장이라고도 불린다. 정제나 캡슐을 알루미늄 혹은 플라스틱에 개별 포장한다. 한쪽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구조다. 손으로 눌러 깐다. 필요할 때마다 한 알씩 꺼내 먹는다. 위생을 고려한다. 유효기간을 감안한다. PTP 상태가 최선이다. 포장 채로 환자에게 전달하면 좋다. 불편이 따른다. 여러 종류 약을 한꺼번에 먹기 어렵다. 쉽게 깜빡한다. 빼먹는 약이 생길지 모른다. 약국은 복용 편의를 위한다. 포장된 약을 전부 깐다. 한 번 먹을 만큼 나눈다. 비닐 약포지 하나에 넣는다. 재포장한다. 조제실 업무다. 때로 ATC 기계가 대신한다.

 어떤 약은 까면 안 된다. 포장 그대로 조제하고 보관해야 한다. 보통 습기에 약한 성분이다. 까서 포장하면 부서진다. 끈적하게 들러붙는다. 약효는 떨어진다. 성질은 변한다. 구강붕해정도 마찬가지다. ODT(Orally Disintegrating Tablets)라 불리는 제형이다. 입에 넣으면 침으로 약이 녹는다. 물 없이 삼킨다. 수분에 민감하다. 편두통 약도 따로 포장한다. 매일 안 먹는 탓이다. 전조증상이 생길 때, 아플 때 먹는다. 다른 약과 함께 포장하지 않는다. 어떤 약은 다른 약 물성에 영향을 미친다. 약물이 서로에게 작용하지 않도록 막는다. PTP로 내보낸다.

 일과는 일련과 같았다. 목록을 기억한다. 처방전을 본다. 챙길 약물을 표시한다. 선반에서 약을 찾는다. 적절한 수량을 꺼낸다. 용법 스티커를 붙인다. 단독 처방이면 바로 복약대에 내놓는다. 다른 약과 함께 처방되었다면 가운데 테이블에 둔다. 검수를 거쳐야 한다. 입구에서 처방전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서서 일했다. 발 아치는 당겼다. 종아리와 허벅지는 부었다. 허연 살은 압박 스타킹 위아래로 튀어나왔다. 슬관절은 삐걱거렸다. 고관절은 접혔다.


 ― 실습 약사님, 개수 틀렸어요.

 우럭은 또 불렸다. 약 위치를 못 익혔다. 셈과 손이 느렸다. 묶음 단위는 제조사 입맛대로였다. 한 판은 오진법, 칠진법, 십진법, 십 사진법을 오갔다. 한 통에 스물여덟 정, 예순 정, 아흔 정이 들었다. 우럭은 수조 바닥에 가라앉았다. 머리를 찧었다. 쿵쿵거렸다. 유리는 견고했다. 울림조차 없었다. 초점이 흐렸다. 눈꺼풀이 없었다. 눈을 못 감았다. 시선을 멀리에 던졌다. 복약대로 나가는 커튼을 응시했다. 잔 꽃무늬가 팔락거렸다. 숨이 턱턱 막혔다. 뻐끔거렸다.

 대게는 암산을 포기했다. 집게발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옆으로 다니는 법을 익혔다. 장애물을 피했다. 넙치는 수치를 잃었다. 한때 새우였던, 우럭이었던 응어리는 휘발되었다. 소위 초심이라 부르는 덩이였다. 느긋하게 옆을 보았다. 바닥을 미끄럽게 스쳤다. 나 참. 등록금 내고 배우려 온 건데. 큰 실수만 안 하면 되지. 어쩔 거야? 돔은 뻔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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