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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10. 2022

리본

단편소설 4 화

 여덟 시. 보도는 퇴근길과 사뭇 달랐다. 불빛 휘장을 걷었다. 밤사이 분칠한 어둠은 없었다. 말간 얼굴을 마주한 듯했다. 길과 온화는 서로가 서름서름했다. 귀를 막을 음악은 없었다. 귓바퀴는 희게 드러났다. 기압 차는 표피를 에었다. 몸을 떨었다. 마디마다 찬 기운이 돌았다. 마스크에 숨 방울이 맺히면 아홉 시였다. 하루는 설익은 채 빙빙 돌았다.


 ― 커피 마실 사람?

 송 약사였다. 아침마다 수요를 조사했다. 조제실 사람들은 드문드문 손을 들었다. 젊은 약사는 끄덕이며 수를 셌다. 핸드폰을 톡톡 눌렀다. 이내 배달이 왔다. 수다스럽고 살가운 성상은 직원에게 인기를 얻었다. 온화가 커피를 사양할 때면 둥그런 어깨에 김이 빠졌다.


 양 약사는 온화 오른편에 앉았다. 약을 검수하고, 온화가 쓴 봉투에 담았다. 으레 묻곤 했다.

 ― 실습 약사님, 어제는 공부 열심히 하셨어요?

 숙제 안 한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양말 안이 까슬거렸다. 발을 꼼질거렸다. 껄끄러웠다. 모래일 리 없었다. 온화는 말을 돌렸다.

 ― 양 약사님, 머리 리본이 멋지네요.


 리본은 한 뼘 크기였다. 질끈 묶은 뒷머리를 풍성하게 장식했다. 달콤한 연분홍이었다. 옷가지 색감을 게걸스레 빨아먹은 때깔이었다. 가운 안은 색채라곤 없었다. 후드는 진회색 구김이 갔다. 조끼 패딩은 낡아빠진 검정 광택을 냈다. 질문받은 뺨에 짧게 화색이 돌았다.

 ― 둘째 선물이에요. 자기 여자친구 주려고 매장에 들렀는데, 제 것도 샀대요.

 열한 살이랬다. 오늘은 우리 첫째가. 어제는 우리 둘째가. 툴툴대는 말끝에 미소가 묻었다.


 사십 대 여자였다. 과한 왕방울 리본을 기꺼이 달았던. 새까만 머리칼을 하나로 대강 묶던. 정돈되지 않은 잔머리가 부풀어 민들레처럼 복슬복슬했던. 네모 납작한 자주색 뿔테 안경이 어딘가 촌스러웠던. 한 치수 큰 라텍스 장갑이 헐거웠던. 얇은 가운 안 두꺼운 옷을 세 겹 껴입던. 똑같이 생긴 아들 둘을 구분하던. 쌍둥이라 할 말이 두 배로 많던. 자기 이야기는 일절 않던. 짧게 본 양 약사였다.


 날 선 시간 사이 숨 쉴 틈은 짧았다. 찰나는 존중받지 못했다. 예기치 못한 끼니는 무리하여 무례하게 점심을 비집고 들었다. 오 국장이 추천한 뚝배기가 그랬다. 사십 분과 상극이었다. 극구 사양했다. 도시락을 쌌댔다. 뜨거운 음식을 잘 못 먹는댔다. 거절 두 번은 허공에 무력하게 흩어졌다. 실습을 왔으면 꼭 가야 하는 맛집이랬다. 세 그릇은 금방 나왔다. 흰 액체는 섭씨 백 도를 훌쩍 넘었다. 기화하여 펄펄 피었다. 돼지 내장을 빠르게 씹었다. 경구개와 연구개는 나란히 익었다. 인두는 시뻘겋게 헐었다. 하부 식도 괄약근은 느슨해졌다. 위산은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누가 누굴 잡아먹는지 헷갈리는 식사였다. 소화 못 한 매일은 쌓여 일 주를 만들었다. 온화는 새로운 업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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