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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09. 2022

까만 점

단편소설 3 화

 난데없는 암호였다.

Warfarin 3.5mg bid ― 홀숫날
Warfarin 0.5mg bid ― 짝숫날

 더듬거리며 해석했다. 홀숫날은 와파린 3.5mg을 먹고, 짝숫날은 0.5mg을 먹어라. 심방세동 환자였다. 심장이 불규칙하고 약하게 뛴다. 혈전이 잘 생긴다. 피떡은 혈류를 타고 돌아다닌다. 색전이 되어 뇌혈관을 막는다. 심인성 색전성 뇌졸중이다. 예방하고자 한다. 미리 약을 먹는다. 혈액을 묽은 상태로 만든다. 와파린이 몸에서 할 일이다.

 문제가 생긴다. 혈액이 응고되는 정도는 들쭉날쭉해진다. INR(International Normalized Ratio)이 일정하지 않다.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이틀에 한 번씩 3.5mg과 0.5mg을 번갈아 복용한다. 약물치료학에서 배운 내용이었다. 시험을 준비하며 달달 외웠다. 처방된 언어는 생소했다. 온화는 애꿎은 후두부를 긁었다.


 난이도는 시간과 비례했다. 처방은 쉼 없이 밀렸다. 왼쪽 팔꿈치에 종이가 쌓였다. 실소할 여유가 없었다. 실수는 잦았다. 무질서는 여차하면 증가했다. 종이류 타는 쓰레기였다. 맞게 쓴 봉투 둘도 버려졌다. 오른쪽 윗부분 굵은 글씨 탓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처방전을 여러 장 들고 온 환자였다. 신경과,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봉투에 과명을 각기 기재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안 쓴다. 민감한 부분일지 몰라서다. 무지는 무례를 부를 뻔했다. 온화는 뺨 안쪽을 씹었다.


 목소리는 기진한 틈을 파고들었다. 양 약사가 불렀다.

 ― 실습 약사님, 식사하러 가세요.

 송 약사는 옆에서 거들었다. 장난스레 격려했다.

 ― 오 국장님이 쏘는 날이네요. 양껏 먹어요.


 첫 회식 장소는 회전초밥집이었다. 제한 시간은 사십 분이었다. 혀는 바빴다. 덜 으깨어진 날것을 목젖으로 넘겼다. 밥알은 식도를 버겁게 훑었다. 구 분 남은 때였다. 오 국장은 한우 초밥과 장어 초밥을 추가했다. 특별 주문해야 나온댔다. 생색 듬뿍 묻은 두 접시가 차려졌다. 절반만 익은 소 살점을 빠듯이 넘겼다. 뼈가 잘 발린 장어에 김이 피었다. 아쉽게 남길 생각이었다. 오 국장은 겉옷을 걸쳤다. 의자를 끌었다. 눈을 흘겼다. 위쪽에서 음성이 들렸다. 온화를 둔탁하게 재촉했다.

 ― 아깝다. 빨리 먹어.

 온화는 젓가락을 급히 집었다. 정갈히 놓인 두 막대가 미끄러졌다. 간장 소스는 부지런히 침에 섞였다. 얹힌 순무는 어금니에 짓이겨졌다. 허연 살을 뻑뻑 씹었다. 약국에 돌아가자 송 약사가 물었다.

 ― 몇 접시 먹었어요? 많이 못 먹었을 것 같아.


 곤죽이 되었을 꼬리였다. 살아났다. 오후 내내 팔딱거렸다. 퇴근까지 위 상부를 꼭꼭 찔렀다. 열여덟 시. 도로는 만차였다. 온화는 도망치듯 다리를 놀렸다. 무릎이 휘청거렸다. 팔을 휘적거렸다. 왼쪽 검지가 눈에 들었다. 까만 점이 두어 개 찍혔다. 뚜렷했다. 깜빡이던 인공위성보다 더. 하늘은 먹색으로 흐려졌다. 목구멍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 푸스스.

 출근 첫날은 펜 뚜껑도 제대로 못 닫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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