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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14. 2022

버거운

단편소설 6 화

 바늘은 숫자를 더디 훑었다. 익숙한 제약회사 마크가 시계 판 중앙을 장식했다. 짧은 침은 십을 찔렀다. 한기가 들었다. 썰물 빠지듯, 피가 말단부터 씻기었다. 손끝부터 시작해 손바닥까지. 차츰 희게 질렸다. 손톱에 파란 반달이 생겼다. 온화는 팔짱을 끼고 근육을 떨었다. 임시방편으로 라텍스 장갑을 찾았다. 양 약사와 손이 스쳤다. 사람다운 온기였다.

 ― 약사님 손은 따뜻하네요.

 ― 예전에는 손이 찼어요. 운동하고 나아졌죠. 아침밥은 먹나요? 당 떨어지면 손발 차니까 확인하세요. 굶으면 뇌세포 늙어요.

 온화는 양 약사 말에서 원인을 찾았다. 저혈당증이었다. 아침 공복에 혈당이 뚝 떨어졌다. 눈앞이 흐리고 어지러웠다. 조제실 선반을 살폈다. 출처 모를 초코바 하나가 굴렀다. 입에 훌렁 털었다. 아침을 챙기기로 다짐했다. 늘 밥보다 잠을 우선했기에, 제법 큰 결심이었다.


 점심 이십 분 전이었다. 자유로운 한낮 햇살을 기대했다. 몸을 푸는 중이었다. 송 약사는 온화를 불렀다. 유명한 버거집이 있댔다. 미리 배달시키자고 말했다. 온화는 거절 의사를 비쳤다. 점심을 따로 먹겠댔다. 버거를 싫어한댔다. 송 약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왜 싫어해?

 머리뼈가 왕왕 울렸다. 혀에 가시가 돋았다. 속에서 빙빙 돌았다. 볼 안쪽과 입천장을 잔뜩 할퀴었다. 그럴 수도 있지. 싫어하는 데에 이유가 따로 필요한가. 모든 사람이 같은 음식을 좋아할 리 없잖아. 미운 말을 목젖으로 밀었다. 간신히 입술을 뗐다.

 ― 다진 고기를 안 좋아해요.

 송 약사 눈초리는 금세 세모가 되었다.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 일단 한 번 먹어봐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나중에 만 원씩만 보내줘요.

 난도질당한 살점이었다. 핏빛 즙은 구강 내를 진득하게 적셨다. 짐작대로 후회했다. 만 원 내고 얹혔다. 재주도 좋았다. 어슴푸레한 휴게실에서 사십 분이 끝났다. 이번에도 태양 빛은 못 봤다. 심장 한구석에 이끼가 낀 듯했다.


 멍청히 내려앉은 눈썹 위에 작은 달그림자가 드리웠다. 양 약사는 온화 안색을 살폈다. 어린 이마에 패인 홈을 염려했다. 양 약사는 장갑 낀 손을 흔들었다. 눈앞에 살구색 라텍스가 펄럭였다.

 ― 슝—. 비행기 지나간다. 여기 봐요. 무슨 일 있어요?

 ― 별일 아니에요. 효과음이 재미있네요.

 ― 쌍둥이 아들 키우려면 어쩔 수 없어요. 짠―, 뿅―, 슝― 은 기본이에요.

 물음이 툭, 쏟아졌다.

 ― 양 약사님. 식사를 따로 하고 싶은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나름 여러 번 의사를 표현했지만 실패했어요.

 ― 겸양의 표현이라 여겨 계속 권했을지 몰라요. 앞으로 혼자 챙기겠다고 말씀드리면 알아들으실 거예요.

 짧게 울컥했다. 반발이 치밀었다. 말처럼 쉬웠으면 지금껏 억지 끼니를 함께하지 않았겠죠. 순도 삼십 퍼센트 믿음이었다. 온화는 송 약사에게 말을 꺼냈다. 모아둔 용기는 과분했다. 일은 싱겁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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