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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16. 2022

끼니의 가벼움

단편소설 8 화

 오백 원 동전, 한 푼이다. 땅에 떨궜다. 휴지통에 버릴까? 아니다. 줍는다. 그대로 쓴다. 약, 한 알이다. 조제실 바닥에 떨어졌다. 직원은 허리를 숙였다. 주웠다. 카세트에 다시 넣었다. 한 알은 한 푼이었다. 멀끔한 척, 시치미 뚝 떼고 잘 포장되어 나갔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속은 몹시 찜찜했다. 자신이 먹을 약이라도, 떨어진 걸 쓸까? 한 직원은 답을 주었다. 약포지를 뜯다 알약이 튀었다. 쓰레기통 부근으로 굴렀다. 한 직원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 어이쿠, 지지.

 입에 쏙 넣었다.

 대학에서 온화는 막연한 믿음을 키웠다. 청결을 기대했다. 조제실이 병원 무균실에 가까우리라 어림짐작했다. 어림도 없었다. 조제실은 먹자판이었다. 직원들은 ATC 앞에 먹거리를 두었다. 과자, 우유, 바나나, 귤, 농담 따위를 수시로 까먹었다. 인정 넘치는 관습을 따랐다. 근무자가 생일을 맞으면 공동 회비로 떡을 돌렸다. 한 직원 생일이었다. 흰 가래떡은 멀건 온기를 뿜었다. 일회용 종이컵에 담겼다. 한 직원은 컵을 살뜰하게 돌렸다. 마지막은 실습생 차례였다. 약 가루가 묻었을지 몰랐다. 흐린 눈으로 넘겼다. 맛나게 짭짭거렸다. 온화는 인간이었고, 편한 쪽으로 적응하는 동물이었다.


 ― 떡 GI 지수가 얼마나 높은지 몰라? 난 안 먹어.

 오 국장은 퉁을 놓았다. 튀어나온 윗배만큼 건강을 염려했다. 식단을 관리했다. 샐러드를 정기 구독했다. 의지는 인중만큼 짧았다. 미간만큼 좁았다. 자주 남았다. 유통기한이 임박했다. 던졌다. 환자에게 약 봉투를 떠밀 듯, 잘 포장된 한 끼를 팽개쳤다. 샐러드는 굴러떨어졌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밑바닥에 어린 사람이 위치했다. 이십 대 실습생이었다.

 온화는 평소 샐러드를 즐겼다. 예기치 못한 식사는 별개였다. 오물과 같았다. 뒤집어쓴 무례에 질식할 기분이었다. 거절도 폐기도 못 했다. 초록 잎은 썩기 쉬웠다. 조급했다. 무겁게 싸둔 반찬을 미뤘다. 으적으적 씹었다. 백 육십오 킬로칼로리였다. 가벼운 장작이었다. 오후를 버티기 부족했다. 흉부에서 불쾌한 연기가 피었다. 불 완전 연소 된 속내였다.


 ― 먹고 싶은 것 드세요.

 양 약사 말이었다. 오 국장과 대화하랬다. 첫째 아들을 언급했다.

 ― 첫째가 실습 선생님과 닮았어요. 학교 마치고 색칠 놀이를 하고 싶었대요. 저는 바깥 산책부터 하자 그랬지. 산책하고 색칠할 수 있으니까. 아니었어요. 조그만 머리통에도 일과를 짰더라고. 하루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엄마, 나는 산책 싫어. 집에서 색칠 놀이하고 싶어. 미안했어요. 좋을 일이라고, 선심 쓰듯 산책했는데. 후로는 하고 싶은 것 하랬어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오 국장님도 못된 의도는 아니었을 거예요.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려 못 했을 뿐이죠. 찬찬히 말씀드려 보세요.

 양 약사는 어른이었다. 살갗이 주름지는 방식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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