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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Jun 11. 2021

우표가 붙어있는 편지

내가 알던 사람, S선생님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편지 받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였다. 굳이 편지로 써서 남길 필요가 없는 내용인데도, 지면에 적어서 종이를 접어 건네주는 손을 좋아했다.

 봉투에 담아서 주는 편지는 대접받는 기분이었고, 새로운 방식으로 모양을 내서 접어준 편지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같아 들뜬 마음이 들었다.


 새롭게 접어준 편지를 받아 들면, 내용을  읽고서  번이고 종이를 접었다 폈다 하며  마감 방식을 터득했다. 그리고  똑같은 방법으로 종이를 접어서 답장을 하곤 했다. 네가 나에게 보내준 마음만큼, 나도 너에게 적어도 그만큼은 돌려주고 싶다는 고마움의 시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누가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교실마다 우체통이 있었다. 학교에서 발행한 종이 우표를 잘라서 편지 봉투에 붙이고, 발신인과 수신인을 적어 우체통에 담아두면, 누군가가  편지를 모두 수거해서   안으로 편지를 수신인에게 전달했다.

 나는 신나게 다른 반의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고, 자주는 아니었지만 내가 보내는 만큼 꼬박꼬박 답장이 교실로 돌아오곤 했다. 그냥 방과 후에 친구가 있는 교실에 가서 편지를 주고받았어도 되는데, 굳이 학교의 편지 발송 서비스를 이용하면  특별한 편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진짜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을 거쳐서  거리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소식 같은 기분이 들게 해서 그랬던 걸까?


 여름방학엔 가끔 담임선생님 이름으로 발송된 편지가 집에 한 통 오기도 했다. 우리들의 방학숙제에 꼭 들어있었던 선생님께 편지 쓰기에 대한 답장이었을까. 선생님들의 방학숙제에도 학생들에게 편지 쓰기가 있었던 것 같다.

 

 S선생님은 무뚝뚝하고 얼굴에 주름이 많은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다. 나는 웬만하면 모든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잔 주의여서 별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사실 S선생님을 싫어했.

 점심시간에 아이들은 선생님 몰래 알음알음 학교 정문 밖을 나가서 길 건너 문방구에 다녀오곤 했다. 급식에선 나오지 않는 자잘한 주전부리, 백 원 이백 원짜리 불량식품을 사 먹기 위해서였다.

 나는 선생님이 나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주전부리를 사 먹을 잔돈이 없기도 해서 아무리 학교 밖엘 같이 나가잔 친구들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교실에 남아서 혼자 책을 읽곤 했다.

 그런데   , 마음에  결심을 하고, 점심시간에 학교  문방구에 다녀왔던 날이 있었다. 동그란 플라스틱 숟가락 모양 틀에 붙어있는 소다맛 사탕을 너무 먹고 싶어서 친구 한 명과 같이 점심시간에 나갔다 .

 그런데 그날 점심시간이 끝나고서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바로 교탁을 두드리며 호통을 치셨다. 오늘 점심시간에 학교 밖에 나갔다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나는 이번이 내 인생 처음이라고 너무너무 억울하다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었지만, 호랑이처럼 잔뜩 성난 S선생님 얼굴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나와  친구, 그리고 나도 몰랐지만 점심시간에 밖에 나갔다 왔던 친구들은 교탁   공간에 나왔고, 바닥에 엎드려뻗쳐 자세로 벌을 섰다. 선생님은 가차 없이 우리의 둔부를 막대 자로 땅땅 때렸다.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후로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S선생님에게 굳이 살가운 태도로 행동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런 S선생님에게서 수신인이 내 앞으로 된 편지가 온 것이다. 딱 봐도 나이가 든 어른의 글씨로 휘갈긴 주소와 내 이름이 흰 봉투 겉면에 도장 찍힌 우표와 같이 적혀 있었다.

 딱풀로 단단히 붙여둔 봉투 입구를 겨우 뜯어내고 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고민하며 조심스레 접혀있는 종이를 펼쳤다.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 아니, 까만 잉크로 찍혀있는 편지였다.  봐도 컴퓨터로 타이핑해서 프린트를  ,   그냥 접어서 봉투에 담은 편지였다.

 그걸 보고 한 마디 한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더욱 실망스러워졌다.

 "어머, 선생님이 많이 바쁘셨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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