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사람, E에 대한 이야기
몇 마디만 말을 나눠보아도 따뜻한 사람이란 걸 다들 알았을 것이다. 하얀 피부에 살짝 발그레한 볼, 연한 자연갈색 머리칼을 가진 E는 유일한 나의 하굣길 메이트였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다르게 집에서 좀 먼 거리의 중학교를 지원했던 나는, 아침엔 정신없이 달려서 버스를 타고 등교하고, 오후엔 느긋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좋아했다. 동네를 넘어가는 고가도로 직전 사거리에는 꽤 큰 맥도날드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함께 노는 친구들이 딱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도 있었고, 오며 가며 인사를 하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이 그룹이 내가 속한 그룹이야, 라고 말할만한 친구들이 없었다.
조별과제를 해야 할 때가 가장 난감했다. 다른 조들은 끼리끼리 친한 친구들이 모여 조를 꾸렸는데, 그런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나서 남은 사람들이 모인 조가 있었다. 그게 우리 조였다. 평소에 나와 같이 밥을 먹던 친구들은 숫자가 맞지 않았는지, 혹은 내가 잘 하리란 기대가 없었는지 나를 챙기질 않았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 조에 E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딱히 모범생, 딱히 똘똘이 같은 친구들 하나 없는 우리 조에서, E는 자신의 능력을 톡톡히 발휘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라디오 연극이었다. 조원 중엔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고, 나도 출연보다는 대본 작성과 음악자료 준비를 자청했다. 작가가 꿈이라던 E는 자신이 잘 알고 있었던 다양한 가요와 옛 노래들을 내가 쓴 대본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서투르지만 열심히 썼던 내 대사들 사이로, 적재적소에 음악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신이 났다. 초반엔 시큰둥했던 조원들에게도 점점 열의가 생겼다. 어떤 애의 어머니가 우리 아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건 처음이라며 집에 불러다 피자를 시켜주셨다. 우리가 이렇게 재밌게 뭔가를 같이 하게 될 줄이야. 아무도 생각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서로가 이 시간을 즐기며 함께 하고 있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사실 그때 아빠가 아끼는 CD를 한 장 잃어버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 조가 으쌰 으쌰 힘을 내어 하나가 되어가고 있단 걸 모두가 알게 되었고, 그 조별과제의 가장 좋은 점수는 우리에게 주어졌다.
E는 참 또래에 비해 생각하는 것이 어른스러웠다. 이미 대학을 다니던 언니 둘과 함께 살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치매로 고생하시던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누구에게 이 소식을 나눠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E에게 문자를 보냈다. 고맙게도 E는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장례식장에 와주었다. 그래서 같이 밥도 먹고, 부모님께 인사도 했다. 그때는 미처 다 말 못 했었지만. 참 고마웠다. 아마도 E는 그의 현명한 어머니와 언니들에게로부터 전수받은 어른의 세계에 대한 상식을 바탕으로 그런 행동을 선택했을 것이다. 혹은 그 특유의 따뜻한 마음으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E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런 친구였다.
우리는 하굣길이 같았다. 학교를 마치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엔 맥도날드가 있었다.
우리의 지정석은 계단 밑 살짝 층고가 낮은 자리에 놓인 테이블. 소프트콘이 하나 300원이었던가. 가끔 그마저도 돈이 없으면 콘 하나를 사서 나눠먹으며 몇 시간이 지나도록 수다를 떨었다. 그 시간 덕에 나는 내가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그때, 나와 같이 지낸다고, 나를 챙긴다고 말하던 친구들이. 사실은 나와 같이 지내지 않고, 내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같이 지내고 싶지 않아도 그 애들마저 없다면 나는 같이 다닐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그냥 그 무리에 속하기로 결정했던 나에게.
찾아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너의 따뜻함이 내게 소중한 보물로 남아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