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이 서툰 알맹이 님의 글 고치기

#교정교열 #글쓰기 #우리말 #문법

    며칠 전, 알맹이 님이 제 메일로 ‘축하 글’을 보내왔습니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읽을 건데,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한국어를 맞게 썼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감성을 더 담고 싶은데, 그럴수록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도 하셨습니다.

    축하 글을 읽어 보니, 품사들을 쓴 순서가 우리 말법과 다른 문장이 많았습니다. 영어로 쓰고 한국어로 번역한 문장들이었죠. 이 가운데 좋은 [보기]가 있어 가져왔습니다. [완성]은 제가 고친 문장입니다.

[보기] 제니와 저는 함께 정말 많은 것들을 ‘처음’ 경험했어요.

[완성] 제니와 저는 정말 많은 ‘처음’을 함께 했어요.

    얼핏 보면 [보기] 글도 나쁘지 않습니다. 길지 않고 어려운 낱말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번역 말투에 익숙한 탓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전문 용어가 마구 섞인 경제 보고서를 이렇게 쓴다면 어떨까요? 한 문장의 길이가 두세 줄이나 되고요. 머리 아프죠. 그러니 번역 말투로 쓴 글은 짧더라도 우리에게 맞게 바꾸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저는 먼저 뜻이 겹치는 낱말을 덜어냈습니다. 그다음 품사를 알맞은 자리로 옮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축하 글’인 만큼 마음이 글에 묻어나게 고쳤습니다. 자세한 건 아래에서 살펴보시죠.  

---

01. 뜻이 겹치는 낱말 덜어내기

[보기] 제니와 저는 함께 정말 많은 것들을 ‘처음’ 경험했어요.

[고침1] 제니와 저는 함께 정말 많은 것을 ‘처음’ 경험했어요.

    ‘많은’과 ‘것들’은 하나보다 많은 수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두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죠. 이 문제는 ‘것들’에서 ‘-들’만 빼면 쉽게 해결 됩니다. 몇 가지 더 살펴볼까요?

    ㄱ. 몇몇 분들에게 → 몇몇 분에게

    ㄴ. 많은 대중들 앞에서 → 많은 사람 앞에서

    ㄷ. 여러 색깔들로 → 여러 색깔로

    ㄹ. 너희들 생각은 → 너희 생각은

02. 품사를 알맞은 자리로 옮기기

[보기] 제니와 저는 함께 정말 많은 것들을 ‘처음’ 경험했어요.

[고침2] 제니와 저는 정말 많은 것을 함께 ‘처음’ 경험했어요.

    글이 자연스러운지 어설픈지 잘 모르겠으면 소리를 내어 읽어보세요. 아무리 글이라도 평소에 말하는 것과 너무 다르면 이상하거든요.

    ‘함께’를 말해보면 숨이 많이 나옵니다. 초성 ‘ㅎ’ 때문이죠. 따라서 문장의 앞쪽에 ‘ㅎ’이 들어가는 글자를 두면 뒤로 갈수록 숨이 찹니다. 특히나 이 글은 알맹이 님이 손님들 앞에서 읽을 것이니, 편하게 숨 쉬며 읽을 수 있게 고쳐야겠죠?

03. 초코파이 같은 글로 만들기

[보기] 제니와 저는 함께 정말 많은 것들을 ‘처음’ 경험했어요.

[고침3] 제니와 저는 정말 많은 ‘처음’을 함께 했어요.

    저는 ‘초코파이’를 먹으면 어릴 적 자주 앉았던 의자와 창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떠오릅니다. 일 나가느라 바쁜 어머니께서 그 자리에 초코파이를 둘 때가 많았거든요.

    알맹이 님도 자기 글이 한때를 같이 한 사람들에게 초코파이 같기를 바랐습니다. 그러기에 ‘처음’이라는 낱말은 알맹이 님의 뜻을 담기에 좋은 낱말입니다. 설레고 두려운 일들과 감정이 녹아 있는 낱말이니까요.

    “많은 것을 함께 ‘처음’ 경험했어요.”

이렇게 떼어 놓고 보면 ‘것을’은 ‘처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것’을 빼고 ‘처음’ 뒤에 토 ‘-을’을 붙여도 글의 내용은 변하지 않죠. 여기서 ‘함께’는 한번 더 뒤로 밀려나 ‘처음을’ 받칩니다.

    다음으로 ‘경험했어요.’는 ‘했어요.’하고 고쳤습니다. 이 문장에서는 ‘경험’도 ‘처음’이라는 낱말 하나로 설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니와 저는 정말 많은 ‘처음’을 함께 했어요.

---

    글은 기본 맞춤법을 따르는 것 말고는 정답이라 할 만한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제가 고친 문장이 가장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는 까닭이죠. 그래서 글을 짓는 일이 재밌고, 머리를 쓰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한 시간, 부디 즐거웠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