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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퍽하게 쌓인 눈을 밟고 싶을 뿐.

질퍽하게 쌓인 눈을 밟고 싶을 뿐.          



겨울이다. 

춥지만 눈이 내리지 않는 동네에 살아서인지 겨울인 게 온전히 현실적이지가 않다. 사실 아침까지 눈이 내리긴 했다. 날이 밝음과 동시에 하늘로 다시 날아가 버린 것인지 전부 사라졌다. 상상이었나 착각이 들 정도다. 

카페에 앉아 빨간 메뉴판을 보고 있자니 곧 크리스마스구나 생각이 든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는 화면에서만 볼 수 있다.

필리핀에 사는 친구는 거대한 성탄트리 앞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반팔 차림이다. 거기도 진짜겠지만 진짜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이병률 작가의 여행 산문집을 읽고 있는데 강원도 얘기가 나왔다.

갑자기 강원도가 궁금해졌다.

거기는 골목마다 눈이 쌓여 있을 것이다. 추운 건 당연한 거라 특별히 춥게 느껴지지도 않을듯하다.  

지도를 열어 강릉 시외버스 터미널을 검색하니 4시간이면 갈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4시간이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동남아 어느 나라보다 멀게 여겼던 것 같다.

창밖 풍경을 멍하니 보려면 버스를 타는 게 좋겠다.

일정을 확인한다. 2박 정도는 해야 하는데 언제쯤 가능할지. 봄은 아직 멀었지만 마음이 바빠진다.      


자꾸 떠나는 계획을 세우는 걸 보니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으로 강원도를 품고, 어디선가 본 한 장의 사진으로 또 다른 세상을 짝사랑한다. 지금 현실을 잠시 외면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을 기세다.

그래도 좋다. 누군가를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빠르고 난 이미 간절하다.     


겨울이라 좋다. 큰 꿈을 꾸는 게 아니다. 겨울이니 골목마다 쌓인 질퍽한 눈을 밟고 싶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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