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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Mar 08. 2022

엄마가 되기로 했다

후회를 남겨두지 않고

지난날에 절친한 회사 선배들과 점심을 먹었다. 달라진 옷 스타일과 볼록한 배를 보고 선배들은      


“네가 임신했다는 것이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다”     


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기는 태어나서부터 엄마로서의 나를 만나기 때문에 엄마로서의 내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겠으나,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결혼을 가장 안 할 것 같은 사람, 아이를 가장 안 가질 것 같은 사람이었다.

   

자기중심적이고, 거침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여자.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갖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습이다.




어릴 적부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였다. 학창시절 들은 공부하라는 수많은 잔소리 중 가장 모티베이션이 됐던 말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공부해’였고,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글은 '지금 알았던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지나간 세월들에 대한 후회를 전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기에 인생에 있어서 지나간 것들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려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는 남기에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한 것을 후회하자’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어떤 행동을 해서 후회하는 것은 후회하는 시점에 노력을 통해 되돌릴 수 있지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그저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에.


그 생각 덕분에 정말 후회 없이 공부했고, 사랑했고, 술을 마셨고, 춤을 췄다.      

홀로 떠난 남프랑스

기숙사 불이 꺼지면 화장실 안에 들어가 공부했고, 사랑이 식으면 주저없이 연인을 떠났다. TV를 보다가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기면 바로 비행기표를 구했고, 서툰 운전 솜씨로 홀로 유럽 남부를 누볐다. 지나가는 사람과 친구가 되었고, 바다와 하늘에서 다이빙을 해보기도 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베토벤을 듣고, 셀 수 없이 많은 밤들에 미친듯이 술을 마셨고 온몸에 김이 모락모락 날 만큼 춤을 췄다. 어느날은 더 늦기 전에 엄마를 파리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실천에 옮겼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생각이 날때 다 털어놓고, 사람에 대한 미움은 남겨두지 않았다. 미움을 받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남편이 프러포즈를 하던 2017년 당시 스물여섯의 나이였기에 그 고백을 받아들일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아직 어린 내가 결혼이라는 명백한 사회적 계약 관계 속에서 답답해 하지는 않을지, 지금까지의 삶의 양식을 포기해야하진 않을지, 종국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회복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리지는 않을지.


고민 끝에 결혼하기로 결심했던 까닭은 이 사람을 놓친 이 순간을 내가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때의 결정은 옳았다. 남편과 결혼하기로 했던 그 날의 결심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재작년 여름부터였다.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체력의 한계가 올만큼 공부하거나, 혼자 여행을 가거나, 바다에 잠기거나, 인사불성이 될 만큼 술에 취하거나, 지쳐 쓰러질 만큼 춤을 추거나, 남편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경험들은 이제 충분했다.

 

삶을 더 풍족하게 할 경험 중 내가 아직 도전하지 못한 것은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언젠가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엄마가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커리어가 가장 고민이었지만, 커리어는 아기의 유무를 떠나 평생의 숙제였다. 더 길게 넓게 생각했을 때, 지금이 아기를 갖기 최적기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젊은 날의 후회도 남지 않고, 건강하고, 육아휴직 후에도 충분히 복귀할 수 있는 시기.


나중에는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결심을 도와주었다. 그때가 돼서는 후회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아기를 낳겠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눈치나 사회적 압박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나의 결정이었다. 아기를 낳는 것은 공부와 술과 춤과 여행의 종점이 아니라 연장선 상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까지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은 다를 것이라는 것을. 아무리 준비한다 해도 서툴 것이고,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의사결정의 순간에서 고민하리라는 것을. 후회와 반성의 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아이를 갖기로 한 것은 온전한 나의 결정이었으며,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던 날들이 있었기에 이를 결정할 수 있었음을 기록한다. 나는 그렇게 후회를 남기지 않고 엄마가 되기로 했다.


아가야, 어쩌면 엄마가 너를 키우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 힘듦의 원인을 너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해. 우리가 혹여나 불행해 보인다 하더라도 너를 절대 탓하지마.


너는 엄마와 아빠의 결정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미안하게도 이 결정에 너의 의사는 조금도 반영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전부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거야.


너는 그저 네 앞에 주어진 길을 걸어 주길. 후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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