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실패하는 작가
작년 6월, 장마가 찾아오기 전, 아찔하게 화창한 날씨에 혼자서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부끄럽지만 난생처음 혼자서 떠난 2박 3일의 여행이었습니다. 여행 전날 가족들에게 돌발선언을 하고 갑자기 훌쩍 가출(?)을 감행한 데에는 제 삶과 일에 대한 혼자만의 성찰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겁 많고 소심한 트리플 A형이라 혼밥도 잘 못하는 제가 3일 동안 혼자 별일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일정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난 혼자만의 여행은 그야말로 놀라움과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일행 눈치 볼 것 없이 제가 가고 싶은 곳만 가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더 머무를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중에도 백미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저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맛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아까울 정도였죠.
마흔이 넘어 뒤늦게 인생을 걸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그 일로 돈 한 푼 벌지 못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했습니다. 그것이 불과 5년 전이지만 제 영혼의 1000만 분의 1도 갈아 넣어보지도 않은 채 ‘역시 이 건 내 길이 아닌가 봐’ 하고 쉽게 포기하려는 참이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독자분들이 존재한다는 것,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이루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행복했던 초심을 잃은 채,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다는 때 묻은 이유로 꿈은 조금씩 시들고 메말라갔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몇 번이나 응모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다시 진심과 노력이 아닌 재능 없음을 탓하며 패배감과 게으름에 점령당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눈에 보이는 보상(?)을 돌려줄지도 모를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위를 따는 과정이었는데 거의 매일 강의를 들어야 했고 리포트를 제출하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봐야 했습니다. 20년 만에 다시 하는 대학교 학업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스무 살로 돌아간 듯 재미도 있었고 기말시험이 끝나고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받고 나니 뿌듯한 성취감도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매일 운동 2개와 학업을 병행하니 일상이 너무도 바빠져서 공허함과 우울함이 뭔지 잡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데에는 글쓰기에 대한 회의도 있었지만 육아가 끝나고 난 뒤 닥쳐온 빈 둥지증후군도 큰 몫을 했습니다. 대학생이 된 딸아이는 90년대 20대 시절의 저처럼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청춘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경단녀 전업주부였던 저는 대한민국의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의 교육과 진학이라는 목표에 올인하였습니다. 미션 임파서블이 파서블하게 끝나자, 영영 다음 미션을 받지 못하고 잘려 버린 중년의 여성 요원처럼 덩그러니 베이스캠프에 혼자 남아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궁상을 떨고 있었습니다. 타고난 심성이 착하고 눈에 띄게 총명했던 딸아이는 자라면서 크게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저희 부부에게 큰 행복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칠흑 같은 입시지옥이라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뜯는 심정으로 딸아이와 합심하여 견뎌냈고 본인 원하던 좋은 결과도 이루어내었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 딸아이 교육에 올인했던 저에게 돌아온 것은 번아웃증후군, 빈 둥지증후군 등 온갖 우울하고 허망한 감정들 뿐이었습니다. 가슴에 숭숭 뚫린 공허함을 채워준 것이 글쓰기였고 남은 생은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살리라 다짐했지만, 얼마 노력해보지도 않고서 단지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잠시 내려두고 자격증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1년 넘게 글쓰기를 내려놓고 다른 일에 몰두해 본 결과, 깨달은 것은 결국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글쓰기이고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그 어떤 보상이 없다 해도 내 삶이 그것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향한 저의 마음은 깊이와 풍미 있는 포도주가 되기는 영 글러먹은 불량 포도일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삭히고 삭혀도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자꾸 차오릅니다. 1년 동안 할 일이 너무도 많기도 했거니와 제 자신을 시험하고자 의도적으로 글쓰기를 놓고 살았습니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손에서 놓아 보았지만, 던져버린 부메랑은 돌고 돌아 결국 제 손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여유시간이 많을 때는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 흔한 영화도 각 잡고 보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나만을 위해 오롯이 쓸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줄어들면 필사적으로 그 소중한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계획하고 실천하며 시간을 아껴서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에 의미 있게 쓰게 됩니다. 아기를 위해 온 일상을 바쳐야 하는 엄마들이 아기가 잠들었을 때 무엇을 할까 설레어하고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그 소중한 나만의 시간에 글쓰기와 여행을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글쓰기가 가장 저를 좌절하게 하고 힘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결코 놓아버릴 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철들지 못했고 여전히 인생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어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고 용기 내어해보고 싶은 것이 있기에 매일매일이 설레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성공한 인생 말고 제 자신에게 인정받을 만한 후회 없는 삶을 만들기 위해 오늘 하루도 버둥대며 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