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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um Aug 13. 2024

작가는 건강해야만 한다

 그 자신에게 글쓰기란 권투와 같다는 헤밍웨이의 글이 제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잘 돌보았지요. (......)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매 순간 작가는 절대적으로 제정신이어야 하며, 건강이 좋아야 합니다. 글 쓰는 행위는 희생이며, 경제적인 상황이나 감정적인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개념의 글쓰기에 대해 저는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건강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작품의 창작은 좋은 건강 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며, 미국의 '잃어버린 세대' 작가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백 년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르케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작가는 건강해야만 한다고?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의 성향에 대해 고뇌와 어두움, 병약 등 편견 가득한 단어들을 떠올렸던 저로서는 마르케스의 말이 왠지 의아하면서도 이내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는 왜 매일 달리기를 하게 되었을까요? 건강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고된 창작의 노동을 도저히 버틸 수 없기에, 그리고 작품 안에는 값진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하기에 작가에게 몸과 마음의 건강이란 선택이 아닌 운명과도 같습니다.

 마르케스가 언급한 대로 활동적이고 건강한 작가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 바로 헤밍웨입니다. 그는 작가로서는 보기 드문 대단한 모험가이자 스포츠광이었습니다. 낚시, 사냥, 권투, 수영, 스키 등 다양한 레저스포츠를 즐길 뿐 아니라 전쟁 참전, 투우, 아프리카 토속문화, 새로운 도시 정착 등 그 어떤 새로운 경험도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척 사교적이어서 술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주는 영감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네 번의 결혼과 적잖은 여자 친구의 존재들 또한 그의 그러한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활기가 넘치고 활동적이며 거칠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인 그의 모습은 많은 여성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렇듯 그의 인생은 어떤 소설보다도 세계의 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과 소재로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헤밍웨이가 ‘움직이는 축제’라고 칭송하며 영혼을 다해 사랑했던 도시 파리에 살았던,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그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쓴 작품입니다.


 뤽상부르 공원에 가면 나는 으레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기곤 했는데, 배가 몹시 고플수록 벽에 걸린 그림들이 더욱 맑고, 또렷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배가 텅 비었을 때 세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가 어떻게 풍경화를 그렸는지를 진정으로 꿰뚫어 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림을 그릴 때 그도 역시 배가 고팠을지 궁금했지만, 어쩌면 그가 식사하는 것조차 잊어버렸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잠이 부족하거나 허기가 질 때 느낄 수 있는 건전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나는 세잔이 다른 면에서 허기를 느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물가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낚시꾼들, 강을 오가는 아름다운 바지선들, 화통으로 연기를 길게 뿜으며 그 바지선을 끌고 다리 밑을 지나가는 예인선들, 돌로 쌓은 제방에 죽 늘어선 키 큰 플라타너스와 느릅나무들, 그리고 군데군데 서 있는 미루나무들을 쳐다보며 센 강을 따라 산책하노라면 나는 결코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나무가 있는 파리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어느 날 밤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다음 날 아침 봄이 갑자기 눈앞에 와 있음을 실감하곤 했다.


 가난으로 인해 허기에 익숙해진 젊은 작가는 음식점과 빵가게,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미식의 도시 파리의 골목들을 지나가는 것이 괴로워 일부러 음식점이 없는 길로 산책을 다닙니다. 허기를 잊고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센 강변과 뤽상부르 공원, 박물관 등 파리의 구석구석을 어슬렁대는 젊은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독자는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이라도 된 것처럼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파리 구석구석을 누비다가 또 어느새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듯한 황홀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셰익스피어&컴퍼니 서점과 ‘잃어버린 세대’ 작가들의 아지트였던 거트 루드스타인의 집, 카페 라라클로즈리 데릴라, 리프 등 그의 단골 음식점(카페) 등등... 또다시 파리를 가게 된다면 그의 발자취를 한번 되짚어보리라 야무진 다짐을 하게 만듭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젊은 헤밍웨이가 가난과 막막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는 모습, 작업의 과정과 창작의 고뇌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운 좋게 그날 작업이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줄줄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글을 쓸 때면 언제나 한 대목을 완성하기 전에는 중간에 일을 멈추지 않았고, 또 다음번에 쓸 내용을 생각해 둔 다음에야 하루 일을 끝냈다. 그런 식으로 다음 날도 무난히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때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 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 갈 수가 있었다.
(......)
나는 원고를 쓰는 중에 하루 작업을 마치고 나면 내가 쓰는 글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기 위해 책을 읽었다. 작업 시간 외에도 쓰던 글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면, 다음날 글쓰기를 시작할 때 글의 실마리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글쓰기에 필요한 내 영감이 샘이 절대로 마르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감의 깊은 샘에 아직 뭔가 남아 있을 때 글쓰기를 멈추고 밤새 그 샘이 다시 차오르기를 기다릴 줄도 알고 있었다.
(......)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 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이다.


 글이 잘 안 풀릴 때면 그는 진실한 문장 딱 한 줄만 쓰게 된다며 자신을 토닥였습니다. 글을 쓰지 않을 때에는 글에 대한 생각을 철저히 비워냄으로써 영감에의 몰입과 이완을 조절할 줄도 알았습니다. 작품을 쓰지 않고는 베기지 못 할 순간이 올 때까지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 또한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처한 현실은 가난하고 초라했지만 아름다운 파리와 벨 에포크의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영험한 기운 덕분인지 그의 영혼과 몸은 늘 건강하고 활기에 차 있었습니다.

 일필휘지로 걸작을 완성했을 것처럼 보이는 범접할 수 없을 듯한 거장들은 그 처절한 고뇌와 실패의 기록들을 남김으로써 ‘너만 아프고 힘든 게 아니야. 나 또한 이렇게 보잘것없이 초라했었지. 긴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 진실한 한 문장(꿈)을 찾게 된다면 넌 분명히 해낼 수 있을 거야 ’ 라며 유약하고 어리석은 후배 작가들의 꿈을 향해 응원과 박수를 보내줍니다.


 작가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지쳐 쓰러진 수많은 영혼들에게 파워풀한 응원을 보내기 위해서, 몸도 마음도 반. 드. 시 건강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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