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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민 Jun 29. 2018

일의 형태

Career

지금은 학생 신분으로 (그리고 클라이언트로부터 일이 들어올 땐 프리랜서로) 지내고 있어서 한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외국계 회사에 소속되어 정규 직원으로 일했다.


외국계라 하면, 왠지 정시에 칼같이 퇴근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모든 상사 및 윗사람들 눈치로부터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취업을 준비할 땐 그랬으니까.

그래서 학부 졸업을 앞두고 외국계 회사에만 집중적으로 이력서를 썼고, 결국 첫 직장을 비롯해서 그다음 직장, 그리고 그다음 직장도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다.


하지만 몇 년간의 회사 생활을 통해 알게 된 것은, 한국에 있는 외국계 기업은 한국 기업의 특성과 외국 기업의 특성이 모두 혼합된, 새로운 형태의 회사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우리나라의 모든 외국계 회사를 다녀본 것은 아니므로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겪은 회사들에 한해서는 확실히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계 회사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위계질서가 엄격한 한국 기업의 분위기외국 기업의 개인주의적인 업무 방식이 공존했다.

"그 건과 관련된 최종 확인은 나한테 받고 진행해야지."라는 직속 매니저의 비난 섞인 질책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씨가 담당자니까 알아서 해."라는 코멘트를 받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가 내가 알아서 하는 일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책임지는 범위일까 고민하기도 했다.


외국계 회사의 또 다른 특성은 정규직 채용을 꺼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수의 인원으로 최대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능력 있는 인원으로 똘똘 뭉친 팀을 만들기 위해, 채용 시 개인의 역량을 아주 많이 본다. 따라서 일인당 맡는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그 이유인즉슨, 외국계 회사에는 헤드카운트(직원의 머릿수)라는 것이 존재해서 왠만해서는 직원을 새로 뽑지 않는다. 정직원 누군가가 퇴사를 해서 공석이 생길 경우에만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일을 잘해도 계약직 직원이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채용 시 채용 공고에 '정규직 전환 가능한 인턴'이라고 명시되지 않았다면, 그 인턴직은 그저 인턴으로 끝날 가능성이 거의 100%에 가깝다는 말이다.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업무 시간에 딴짓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어린 인턴이 있었는데, 그녀는 항상 “정규직만 될 수 있다면”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말이 짠하기도 하고, 사실상 내가 맡은 일이 과도하게 많고 일손이 부족해서 그녀가 정규직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회사의 인사 정책은 엄격했다.

아무리 야근을 밥 먹듯이 할 정도로 일손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누군가가 퇴사를 해서 공석이 생기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실컷 일을 가르쳐서 함께 일하기 편해진, 일 잘하는 인턴을 채용하고 싶은 것은 나뿐만 아니라 윗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모두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였다.

그저 나중에 근로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헤어지기 편할 정도로, 너무 정들지 않게, 적당히 가르쳐서 필요한 일을 시키고 계약 기간 동안 도움을 받는 것을 목표로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정규직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갈망이 얼마나 오래갈까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지만,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며 프리랜서로 자리잡기를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는 직장을 보는 첫 번째 순위가 '워라밸'이다. 기업의 규모나 이름보다도 더 중요하다.

계약직이어도 상관없으니, 그저 정해진 시간 내에 퇴근을 하고, 결혼 후에도 가정과 일을 병행하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고 있다.


요즘 내 주변의 많은 직장인들은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퇴사하는 것을 꿈꾼다.

실제로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한 후 중도에 퇴사하는 친구들도 꽤 봤다.

돈과 안정적인 직장보다는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이 중요해진 시대다.

실제로 '탄력 근무' '재택근무' 등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종류의 일 형태를 채용 공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디지털 노매드'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카페를 가면 컴퓨터와 전화 등을 활용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미 일의 형태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에서부터 더 다양하게, 생각보다 빨리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정규직 형태로 정해진 시간 동안 일을 하고, 능률과 상관없이 그 시간을 무조건 채움으로써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일을 하고, 일한 만큼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그래서 하루 중 일하는 시간 외 나머지 시간은 유연하게 활용하여 휴식 시간을 갖거나 삶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나의 바람이다. 내가 원하는 형태의 그런 일자리를 찾는 것이 조금이나마 더 쉬워지고, 무엇보다도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단지 나 혼자만이 아니었으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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