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er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졸업과 동시에 프리랜서 통번역사가 되었다.
사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며 지내고 있는터라
스스로를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소개하는 것이 아직은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퇴사-대학원 입시 준비-대학원 진학-졸업'의 과정을 거쳐 프리랜서로 홀로서기까지, 나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리고도 여전히 일, 그리고 삶에 대해 배우는 중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올리는 포스팅인 만큼 솔직하게, 자존심 다 내려놓고,
내가 살면서 들은 가장 가슴 후비는 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퇴사 선언(?) 후에 (옛) 상사로부터 들은 말인데, 당시에는 큰 충격으로 와 닿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내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때는 몇 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려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며칠 동안 해외로 휴가를 다녀온 직속 상사에게 나는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고, 함께 잠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나는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던 말--"저 일 그만두겠습니다"--을 울먹이며 겨우 꺼냈다.
오래 일하지도 않은 사원이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퇴사 선언을 하자, 상사는 기가 막혔던 것 같다.
"내가 휴가 간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사장님이 뭐라고 하셨어?"
나는 아니라고, 예전부터 목표했던 대학원 진학을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고, 그리고 만일 목표한 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땐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가르치며 프리랜서로 살겠다고 말했다.
그냥 일이 힘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지하게 하는 말임을 파악한 상사는 갑자기 눈빛과 태도가 180도 바뀌어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의 충격으로, 아직도 그날 들은 말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너 이렇게 얼마 일하지도 않고 그만둔다고 하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다 실패할 거야. 이런 식으로 살면 네 인생은 실패야."
"다음번에 (네가) 취업하려 할 때, 누가 레퍼런스 체크한다고 나한테 연락하면, 내가 좋은 말 해줄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대학원 진학 계획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예전에도 영어 좀 한다고, 통번역대학원 간다며 그만둔 직원들 많았어. 그런데 그런 애들 중에 정말로 대학원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영어를 잘한다는 게 오히려 독이야, 독. 내 주변에도 영어 좀 한다고 자부하던 친구들, 매번 일 그만두고, 이것저것 하더니 결국 끝내 아무것도 제대로 못 이뤘어. 네가 영어 가르치겠다고 하는 거, 그거 다 아르바이트잖아. 계약직. 비정규직. 나이 먹고 언제까지나 계속 그렇게 아르바이트 운운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한 그런 조언이 내 가슴속을 후벼왔다.
아마도 상사는 내가 그 말을 듣고 겁에 질려 냉혹한 현실을 깨닫고, 다시 참고 열심히 으쌰 으쌰 함께 일해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으로 '실패'란 단어를 들었고
그럼에도 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퇴사를 했다.
그때 나는 내게 그런 말을 한 상사와 앞으로 어떻게 한 회사에서, 같은 팀을 이루어,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함께 일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한 인간에 대한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렸다.
덕분에 나는 회사에 대한 미련을 모두 다 털어버리고 속 시원하게 퇴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나 스스로도 놀란 게 있다.
그때 상사가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내 마음속 깊이 잠자고 있던, 나도 몰랐던 '오기' 또는 '승부근성'이 발동한 것 같다.
예상치 못하게, 그런 따끔한 말이 내게 커다란 자극과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정말로 목표한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한 (그녀가 아는) 최초의 ex-직원이 되어야지. 뭔가를 보여주겠어.' 하면서 이를 갈며 공부에 매진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남의 말에 쉽게 상처 받고 잘 흔들리는 내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말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큰 자극을 받아
눈에 불을 켜고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집중했다.
그리고 노력 끝에, 정말 감사하게도,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때로는 누군가의 나쁜 말이 오히려 독한 마음을 먹게 해 주고, 목표 달성을 위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살면서 누군가가 내 목표를 무시하거나 나에게 못된 말을 할 때, 그로 인해 상처 받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으며 시간 낭비하기보다
'그래? 내가 뭔가를 보여주겠어,'라는 독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이뤄낸다면,
그것만큼 완벽한(그리고 생산적인) 복수가 또 어디 있을까.
마지막으로 감히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회사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이든 아니든, 직장 밖에서는 누구나 다 동등한 '사람'일 뿐이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직급이 낮고, 경험이 적다할지라도 (그리고 비록 퇴사할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의 미래나 꿈을 무시하는 말은 누구도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뭐, 내 경우에는 오히려 그런 말이 의외의 좋은 결과로 이어지긴 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