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을 정한 사람에게 유언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보다 훨씬 어린 시절엔 죽는 순간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농담으로 가득한 유서를 끼적이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엔 삶의 부조리에 졸여진 찐득한 분노를 앞세워 유서를 빙자한 치부책을 쓰기도 했다. 아득한 시간 퇴고한 나의 유서는 이제 꼴을 갖춘 듯하다. 나는 불필요한 문장을 죄다 솎아내고 딱 두 마디만 남기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바로…….
휴거를 기억하는가? 아, 8n년 이후에 태어났다면 아마 시사 프로그램에서 사이비 종교에 대해 다룰 때 보았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에는 1992년 10월 28일 지구는 멸망하고 선택된 사람들만이 천국으로 간다던, 문제의 휴거를 주장했던 D교회가 있었다.(혹은 D교회와 관련된 곳.) 나와 자주 도둑잡기와 얼음 땡을 하던 자매가 그곳 신자였다.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수상한 교회에 가는 걸 금지했지만 자매 중 10살이던 큰 언니는 갖은 묘수를 써가며 자신의 미취학 동생을 데리고 교회 문턱을 신나게 드나들었다.
나는 한 번 자매의 안내를 받아 교회 안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흉흉한 도시 괴담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타인을 경계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무르게 교육받았던 나와 몇몇 어린이들은 겁도 없이 그 음침한 지하 세계로 씩씩하게 입장한 것이다.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컸던 우리들은 소풍 당일 아침의 들뜬 표정으로 개미 떼처럼 지하 계단 앞에 줄을 섰다.
정육점을 방불케하는 붉은 조명 아래 갤러리처럼 다양한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허술하게 지어진 죽음의 모델 하우스랄까. 종말의 예언으로 가득한 사진 속 사람들은 누가 하나 부족함 없이 꼼꼼하게 고통받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한 남자가 흡사 머니건이나 차량 속도 탐지기를 닮은 기계를 들고 와서는 우리의 팔뚝에 갖다 댔다. 지옥에 갈 사람들은 그걸 갖다 대었을 때 666이 찍힌다나? 그는 우리에게 멸망을 전도하려 했지만, 주의산만 절정인 말괄량이 아이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남자는 종말의 큐피드가 될 싹수 따윈 보이지 않는 우리에게 초코파이 몇 개를 손에 쥐여주고는 그곳에서 추방시켜버렸다.
그로테스크한 종교 체험을 마치고 지상으로 향한 문을 밀자 해가 쨍쨍했던 기억이 난다. 불길한 기운을 살균하기라도 하듯 태양이 작열하는 운동장에서 정신없이 뛰어놀았다. 불바다 대축제를 믿던 자매도 함께였다. 자매는 쉴 새 없이 뛰었다. 누구보다 삶을 긍정하는 아이의 자세로. 멸망이 내일 닥쳐온대도 오늘 놀 수 없다면 어린이가 아니라는 듯이. 하나 둘 밥을 먹으러 집으로 떠난 뒤 나도 새빨간 불빛이 666 모양으로 내려앉았던 손등을 괜히 바지춤에 문지르며 부모님의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다짜고짜 엄마의 팔에 매달려 “엄마, 지구가 종말한대! 진짜야?” 하고 물었지만, 엄마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종말이 아닌 그날의 매상이었다. 건성으로 대답하는 엄마 옆에서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지구가 종말 하면 피아노 학원 안 가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에 설레는 애가 바로 나였다. 다만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기도 했는데 그건 ‘이제 월간 챔프는 못 보는 것인가? 아직 동화 전집 테이프에 보물섬은 무서워서 듣지 못했는데. 국민학교에 입학하면 왠지 용기 날 것 같은데 어쩌지. 그러고 보니 이제 가요톱텐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일요일 일요일 밤에도 못 본다는 이야기인가? <우리들의 천국>에 나오는 언니 오빠들처럼 대학 생활 하는 건 이제 상상으로만 가능한 일이겠네, 어른 되면 보려고 한 미성년자 관람 불가 비디오는 종말 오기 전에 무슨 수로 다 보냐.’하는 번민들 때문에.
D교회가 휴거를 말하던 그날, 바로 앞 국민학교도 휴교령을 내렸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대비하는 (미처 상경하지 못한 우리 동네) 종말론자들이 교회 앞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선 본진의 혼란한 광경을 생중계해 주었다. 당연히 종말은 없었다. 그들은 뙤약볕 아래 물기처럼 금세 증발했다.
그 이후로도 세계가 멸망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종종 나의 세계는 멸망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멸망 없는 세상이 도리어 미워졌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은 온다는 속담은 시대를 불문하고 유효해 구원은 로맨틱 영화의 클리셰처럼 적재적소에 등장해 나를 일으켰다. 나를 살리고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무시무시한 예언이나 대재앙이 아닌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절망 끝에 늘 약 올리듯 등장해 저만치 멀리서 혀를 날름거리며 이리 오라 손짓했다.
주인공이 결정적인 무언가를 말하려다 끝나버린 드라마, 어른들은 해주지 않던 온갖 염세적 꿀팁을 뿜어대던 라디오 DJ, 오래 기다린 최애 가수의 신보, 미처 극장에서 보지 못한 블록버스터의 신작 비디오, 작가의 영혼을 갈아 만든 성찬으로 가득 채웠던 윙크며 밍크며 나나며 댕기며 이름도 예뻤던 월간 만화잡지, 번호순대로 모으던 고전문학 전집의 빈칸,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하면서 읽어대던 미국 잡지, MTV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 VIP에게만 뚫어주던 문방구의 불법 굿즈, 계절의 냄새와 그에 맞는 제철 요리, 짝사랑하던 남자애가 12시면 나타나던 농구 코트, 교환 일기와 고백의 편지들, 드라마 속 칵테일과 시시하지만 전부였던 동아리 활동…….
나이가 들고 세상에 치여 막연하게 죽음을 끌어당기던 순간을 유예시킨 것들은 어김없이 사랑과 맞닿아 있었다. 죽음의 유혹보다 달콤한 건 역시 가슴을 뛰게 하는 도파민, 그건 마치 심장에 들이붓는 설탕과도 같았다.
나는 가끔 그들을 생각했다. 교회 안의 새빨간 조명과 얼룩덜룩한 벽지, 일그러진 사진 속 얼굴을 떠올렸다. 오래전 일임에도 생생한 장면들이 내 기억력이 좋은 탓이라 여겼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너무나 경직된 표정으로, “세상에, 너 진짜 큰일 날 뻔했구나. 너무 무서웠겠다.” 하고 말해주는 바람에 나는 그것이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이상하고 기이한 경험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정말 멸망을 바랐던 것일까? 거대한 사회구조 앞에 무력해진 개인의 “멸망이나 해버려라!”의 종교적 발현인지, 아니면 천국을 향한 염원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바랐던 것은 사실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목놓아 휴거를 주장하던 그들에게서 도리어 이 세계는 쉽게 멸망할 수 없다는 역설을 배웠듯이, 그들은 종말을 통해 기쁨과 안락만이 있는 유토피아의 환영을 본 것이 아닐까. 그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으려나. 여전히 멸망의 날을 기다리며 두 손을 꼭 모으고 있을지. 번민과 고통만을 끌어안고 오지 않을 세계를 갈망하면서.
각설하고, 다시 나의 유언으로 돌아가 보겠다. 그러니까 내가 생에서 건진 두 마디, 삶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그것에 대하여.
이 시대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천지가 개벽할 운수 대통으로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된다 해도 변하지 않을 그 두 마디는 바로,
“선크림을 발라라.”
그리고
“덕질하라!”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그것이 오늘이 될 수도 혹은 내일이 될 수도 있다. 필연적으로 다가올 죽음에서 피하는 방법 따윈 없다. 그러니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종말의 대기자다. 언제 올지 모를 여정의 대단원을 기다리며 움츠려 있기에 우리 생은 너무나 길다. 방을 꾸미듯 좋아하는 것들로 어지럽게 꾸민 나의 내면은 그 어디보다 안락한 피난처가 되어주노니, 거지 같은 하루를 보냈더라도 내가 만든 끝내주는 밀실에서 한숨 돌리다 보면 인생 또 살만하다 싶은 착각도 드니까.
주어진 몫을 어른답게 해내자 그리고 아이의 얼굴로 즐기자! 미친 사람처럼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 반드시 선크림을 바르고. 기미가 기미를 드러내면 그땐 이미 늦었다. 예방할 수 있는 불운은 기를 쓰고 피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깨닫는다. 그러니 일단은 마음 놓고 푹 자자, 사랑을 하기 위한 힘을 남겨두어야 할 것 아닌가. 모든 불길한 기운을 이불 속에 덮어두고 사랑하는 것만을 꿈꾸는 오늘 밤이 되길. 어차피 지구는 계속 돌고 내일은 내일의 걱정이 온다. 정말 멸망이라도 와 불에 타 죽을 운명이라면 불타는 사랑이라도 해봐야지. 오늘 밤, 감은 눈 안으로 사랑이 불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