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가 먼저 죽어서 네가 내 부고를 쓸 때 말이야. 198X 년에 부산에서 태어나 어쩌고저쩌고. 그런 다음에 평생을 취준생으로 살았으며…….”
세상 오싹한 농담을 하면서 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남편은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임에도 늘 낄낄거리며 웃는다. 무기수에게도 나름의 낙이 있듯이 오랜 시간 가능성의 세계에 갇혀 살다 보면 이렇듯 좌절을 이기는 적절한 유머 몇 가지는 만들어 놓을 수 있게 된다.
작가 지망생. 이것은 좀 애매한 위치에 있는데 무슨 무슨 고시처럼 일제히 같은 날 시험장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격증이 발부되는 일도 아니다. 책을 내면 작가인가? 아무도 내가 책을 낸 지 모르는데? 매일 쓰는 사람은 작가다,라는 말도 있지만 나 말고도 매일 쓰는 사람은 많다. 내 생각에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그 시간을 오래 유지한 대부분은 사실상 사활을 걸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아무리 책상 앞에만 꼼짝없이 앉아 있더래도 말이다.
생각해 보자, 글을 쓰는 것만큼 노력 대비 가성비 달리는 행위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누가 읽을지 읽지 않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쓴다는 건 정말이지 무용한 열정이 아닌가. 죽상으로 한숨을 쉴 때 위로는커녕 시쳇말로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니? 왜 하고많은 것 중에 글을 써서 이 난리니?”라고 물으면 “그러게.” 말고 할 수 있는 대답이 뭐가 있을까. 반대로 누가 진짜 칼 들고 협박을 하면서 글을 쓰지 말라고 하면 나는 정말 글을 안 쓸 수 있을까? 그럼 또 누가 칼을 들이댄 경험을 밑천 삼아 글을 쓰고 있겠지.
체력이 약하고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삶의 효율을 따지는 내게 사실 이런 푸념도 낭비다. 대부분의 시간 나는 그냥 입을 닥치는 편을 택한다. 혈기 넘치던 날에 새겼던 “하면 된다!” 같은 터무니없는 선언은 이미 마음에서 지웠다. 간사하게 노선을 바꿔 “빨리하는 것보다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하다.” 같은 말들을 주워 삼킨 지 오래다. 입안은 쓰지만 약효는 좋아 또 무턱대고 낙관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작가는 못 돼도 정신승리의 달인은 된 것 같다.
어차피 망한 인생 묵묵히 하다 보면 언젠간 뭐라도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버텨도 가끔 열받는 순간들이 있다. 사람들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 앞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노트를 끼적이거나 핸드폰에 메모를 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내가 완벽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고 판단 내린다. 물론 생각을 할 때 사람이 정적으로 변하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성과에 대한 문제와 더 밀접하다. “너 뭘 하고 있긴 해?”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내가 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기분. 너덜너덜한 A4 원고 뭉치는 나의 노력일 뿐 내가 무언가 되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네가 참 부럽다.”
어느 날 우리 집을 방문한 친구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도대체 내가 왜? 나는 늘 그 친구가 부러웠다. 이른 나이에 길을 찾아 한 분야에서 오래 갈고닦으며 전문가라 불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그에 걸맞은 직급도 갖췄으니까. 쓸모 있어 쓰임 받아 매번 쓰임의 결과를 증명하는 삶.
“너는 나보다 훨씬 강한 인간이야. 넌 네 삶도 정신 나간 네 꿈도 포기 안 하잖아. 그냥 미친 인간이 아니라 대단히 미친 인간이라고. 더 그레이트 크레이지. 나는 내가 혹시라도, 온전하게 내가 원하는 걸 하나라도 했을 때 지금 가진 걸 다 잃을까 봐 아무것도 못 하겠어. 잃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무야, 무! 내 의지로 삶이 굴러간 적이 한 번도 없어. 나는 꿈꿀 시간조차 없어. 오로지 평가 평가 평가.”
완벽한 인생은 없고 사람마다 꿈꾸는 세계도 다른데, 내가 성공이라 부르는 스테이지에 가닿은 사람에게도 정작 그것은 성공의 무대가 아니라 유배지에서의 한때일 수도 있는데. 이 자명한 이치를 알면서도 막상 자기 것이 되면 제대로 파악이 안 되더라. 그 시간만큼은 서로가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다는 시기 섞인 힐난을 접어두고 서로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위로했다. 자신의 인생이라 자신은 온전히 다 볼 수 없는, 이를테면 삶의 목덜미나 등허리 같은 곳을 훑어주면서. 꿈이든 성과든 모든 걸 덜어내고도 너와 나는 그 자체로 근사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믿으면서.
친구와 나는 헤어질 때 서로를 부러워하는 그 마음만 남기자고 약속했다. 나는 너를 부러워하고 너는 나를 부러워하고 그렇게 자기 연민을 덜어내고 서로가 동경하는 삶 속에 있다는 자부심만을 남기기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지망생이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속하고 싶고 지금 잘하는 만큼이나 다른 것들도 잘하고 싶고 가지고 싶고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더 나아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인정 따윈 필요 없이 나 스스로 완벽하고 싶고 혹은 모든 것에서 달아나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고. 그것이 무엇이든 크건 작건 갈망하지 않고 사는 인간이 있을까.
누구도 우리의 삶을 재단할 수 없다. 누구도 우리의 꿈을 또한 우리의 잠과 피로를 대신할 수 없듯이. 뜬 눈으로 지새우는 밤도, 생각 끝에 지쳐 잠드는 밤도 오롯이 홀로 견뎌야 하는 하루의 몫이다. 뭉근히 익히기 위해선 펄펄 끓는 불씨 앞에 꼼짝없는 시간도 필요하다.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오늘 밤은 뒤척여 보자. “도대체 넌 이 시간에 남들처럼 안 자고 뭘 하고 있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뿐히 무시하고 자는 척 꿈꾸는 척 온전히 당신만의 지도를 감은 눈 위에 그리자. 그러든지 말든지 나한테 그러는 당신이야 편안히 꿀잠 주무시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