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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Oct 26. 2023

읽고 익어간다

열두 번째

    

 나는 책을 먹고 자랐다. 말 그대로 책을 뜯어먹었던 시기도 있었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본 청소년 드라마에서-아마도 MBC에서 방영한 <사춘기>였을 것이다-주인공은 우등생인 친구를 따라잡고 싶어 밤새 공부를 하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 사전의 한쪽을 뜯어먹었다. 그 장면은 내게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지고 싶은 지식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장면을 따라 나도 책을 먹었다. 먹었다기보다는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툭 뱉었다. 나비의 날개처럼 얇고 부드러웠던 사전의 질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책을 먹는 것이 나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알 수 없지만, 책의 한 페이지를 찢어서라도 내면의 한 부분을 채우고 싶다는 그 열망을 나는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책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지식이 흡수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덕분에 상상력이 많은 아이로 자라게는 됐다.


 이야기가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덤벼든 나였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책은 의미가 남달랐다. 사실 이야기가 있는 것이라면 거의 환장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영화나 발레나 미술은 이야기에 앞서 현란한 영상 효과나 매혹적인 색채 혹은 우아한 움직임 같은 감각이 먼저 나를 지배했다. 온전히 이야기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렸다. 감각만으로도 훌륭했으니까.



 책은 달랐다. 새하얀 배경에 단정하게 나열된 글씨들은 언제나 빼곡한 인사를 건넸다. 한 자 한 자 꾹꾹 읽어 누르며 의미를 되새김질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떠오르는 이미지를 채색하는 것은 물론, 묘사에 살을 붙이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누구의 강압도 없이 스스로가 부여한 과제, 나는 책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편한 곳에 들어가 익숙한 자세로 세계에 몰입했다. 말을 이해하기 위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봐야 했다. 확실히 다른 창작물에 비해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책은 그 시간마저 나의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책이 가진 시간성. 한 마디로 그건 졸이는 시간이다. 깊은 맛을 내기 위해 푹 우려내야 하는 곰탕처럼, 책을 읽고 나서 성숙한 사유를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내 안에서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은 거저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성취도 낭만도 사랑도 심지어 사유까지. 붙여넣기식 의견을 우리는 의견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양한 세계의 문을 몇 번이나 열고 닫길 반복했는지 모른다. 비록 몸은 방 안에 있어도 영혼은 자유로웠다. 어린 나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것은 정신적인 것뿐 아니라 물리적 두려움을 동반해야 했기에 나는 책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나는 온 세상을 쏘다녔다-정신의 여권이 존재한다면 나는 중간 등급의 우수여행자는 될 거라 자부한다-문득 인간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기에 이야기를 창조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지만 모든 걸 다 경험해버린 인간에게는 폐허만이 남지 않을까? 끔찍한 뉴스를 그저 ‘보았을’ 뿐임에도 며칠 동안 잠 설치는 나라는 인간에게는 더.     

 

 책을 사랑하며 나는 책의 물성마저 사랑하게 되었다. 책이 가진 질감과 냄새 그리고 무게를 사랑한다. 어떤 책은 한 손으로 쥐고도 남을 만큼 가볍지만 생의 전반을 투자해 숙고해야 할 만큼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어떤 책은 일명 벽돌 책이라 불리며 감히 펼치기에도 부담스러울 만큼의 두께를 자랑하지만, 막상 펼쳤을 땐 끝나는 것이 아쉬울 만큼 짜릿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오래된 책을 집어 들었을 땐 달콤한 쿠키 향을 느낄 수 있다. 원본과 가품이 따로 있지 않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부여되는 두툼한 시간의 증거.      


 나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책장 앞에 선다. 생은 유한하고 작가는 자기 생의 어느 시간을 뚝 떼어 우리에게 할애했다.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내가 읽어낸 책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차분해진다. 모든 것이 빠르게 나아가는 시대에 온전히 하나의 주제에 집중해 묵묵히 자기만의 문장을 써 내려간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책, 이게 뭐라고. 책이 더럽게 안 팔리는 시대라고 한다. 성인 인구의 대부분이 1년에 1권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인간은 다시 책으로 돌아갈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나 재미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한 무지의 깨달음은 수치심 대신 경탄을 동반한다. 세상은 넓고 인간은 다양하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언제든 그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책이 무엇을 말하든 나는 그 자체로 희망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여전히 책을 먹고 자란다. 이제는 늙어버리는 일만 남았다고 자조 섞인 농담을 하는 친구에게는 웃음 대신 책을 권한다. 더 이상 책 귀퉁이를 찢어 잘근잘근 씹을 만큼 어리숙한 아이는 아니지만 책이 나의 뼈와 살이 되었음을 누구보다 명확히 말할 수 있다. 무궁무진한 책의 세계를 몰랐어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이 빠진 내 삶이 지금처럼 충만할 것인가에 대해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남들 눈에 나의 생이 어떻게 평가될지는 몰라도 하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만일 내가 가진 면 중 눈여겨볼 만한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99퍼센트 책이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읽은 만큼 더 나은 내일의 나를 기대하며, 오늘도 두 발 쭉 뻗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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