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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Nov 30. 2023

아이처럼 자고 싶어

마지막


   

 내가 어렸을 때, 늦둥이 동생이 잠들면 우리는 발걸음을 조심했다. “조심해, 애 깰라.” 그럼 귀신같이 알아듣고 깨금발로 살짝 바닥을 누비며 작은 소리로 대화했다. 내가 어릴 때도 어른들은 그랬을 것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은 한 곤히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울 만큼 심술궂은 어른은 없었다. 요즘 들어 부쩍 어린 날의 잠이 그리워진다. 온 세상이 눈에 덮여도 세상모르고 빠지는 잠.     


 아직도 선명한 어 날의 꿈들이 있다. 나는 꿈에서 주로 하늘을 날았다. 악당들이 쫓아올 때마다 땅에 발을 굴렀다. 그럼 하늘을 날았다.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을 만큼 높이. 그래서 나는, 중력을 거스르고 나는 기분이 궁금하지 않았다. 꿈에서 다 느끼니까. 자기 전에 오늘도 하늘을 날겠어, 하고 되뇌면 정말 하늘을 날았으니까. 언제부터인가 아무리 되뇌어도 꿈에서 하늘을 나는 일은 없었다. 그 이후론 대부분 쫓기거나 개에게 물렸다. 차라리 꿈을 꾸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 무서운 꿈이 많았다. 그중 으뜸은 속절없이 곤두박질치는 엘리베이터 안에 홀로 갇히는 꿈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남겨져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도 없이 서서히 몰려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고통을 어찌나 생생하게 느꼈는지. 생각해 보니 그맘때 나의 현실이 꼭 그랬다. 물론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나는 정말이지 손대는 것마다 망하는 20대를 보냈다. 사회에서 서서히 고립되는 기분은 죽음과 유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았다.     


 포근하고 신나는 꿈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메운 건 현실의 꿈이었다. 내 꿈은 강력해 비루한 현실에서도 앞을 보게 만들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가고 싶은 곳이 생겼고 닮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사실 누가 말리지 않으면 12시간이 무언가, 16시간도 거뜬히 잘 수 있을 만큼 잠 애호가였다. 하지만 잠을 포기해야 했다. 줄일 수 있는 건 잠밖에 없었다. 쫓기듯 잠들어 허겁지겁 꿈꿨다. 내가 덮은 이불의 감촉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그렇게 차곡차곡 일상을 쌓아갔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 그저 지금의 내가 되었을 뿐이다. 잠을 내놓고 얻은 결과치고는 싱겁다. 엄청난 반전도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쾌감도 없는 그저 나라니. 그저 나라는 결괏값을 망한 성적표처럼 받아 들고 고심하던 날들이 있다. 도대체 나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떡하긴 뭘 어떡하겠는가. 살아야지. 그래도 살아야지. 살다 보면 뭐라도 된다, 난 아마 이 에세이를 쓰며 빈번하게 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맞다, 그게 요즘 나의 모토다.     


 나는 더 이상 잠을 줄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잠을 줄일 수 없다. 서서히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고 있다. 오래 글을 쓰면 어깨가 아프고 앉아서 책을 읽으면 허리가 아프고 머리를 굴리다 보면 눈앞이 흐려진다. 일정 시간은 ‘드러누워’ 있어야 한다. 하필 결혼하며 우리가 제일 비싸게 값을 치른 게 침대다. 9년의 세월을 견디면서도 침대는 아직 건재하다. 게다가 머리를 대면 어쩜 이리 솔솔 잠이 오는지. 그렇게 단잠에 빠지고 눈을 뜨며 사위는 어둑하고 어쩔 수 없이 죄책감을 느낀다. 아무도 나에게 종용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나는 내려놓은 듯 말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한가 보다. 포기한 척 살면서도 아직도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자고 다짐하는 나날이다. 타고난 그릇은 어쩔 수 없다. 아무리 품고 싶어도 품을 수 없는 것은 놓아주고 내 그릇만큼이라도 정성을 다해 채워보자 다짐한다. 굳이 잠과 사투를 벌인다 한들 이제는 9할이 잠의 승리니까. 잘 자야 한다. 맹세처럼 나는 이 말을 나에게 한다. 잘 자는 건 잘 사는 것과 같으니까. 악다구니를 쓰며 떼를 써봤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잘 자는 건 억울함 없이 미움 없이 원망 없이 상처 없이 온전하게 하루를 보냈다는 증거니까.      


 조용히 해라, 애 깰라, 깨금발로 살금살금 내 머리맡에 앉아 나를 살피고 이마를 쓸어주고 다리를 주무르고 호호 더운 바람을 불어주며 내 잠을 지켜주는 사람은 이제 없고 그 역할을 내가 이어받았다. 언젠가 내 아이도 잠을 내어 주고 꿈을 먹겠지, 어떤 날엔 잠으로 도망치며 현실을 잊기도 하겠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이 가슴을 콕콕 찌르지만 별 수 있겠나. 내 아이는 자기 몫의 잠을 자고 삶을 살 텐데. 나의 이런 보살핌도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 지켜 줄 잠이 있다는 것에 그저 고마워할 따름이다.      


 에세이를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부디 모두 잘 주무시길 바란다. 짧든 길든 원하는 시간만큼 최고의 잠을 주무시길. 누구의 강제나 압박이나 첨언 없이, 그저 내가 원하는 꿈을 꾸시길. 부디 우리 오늘도 푹 잡시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오늘 수고한 당신에게 평온한 잠을 선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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