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해도 괜찮아!
내가 아이에게 하루 중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기다려." "아, 미안." "실수해도 괜찮아."일 것이다.
기다리라는 말은 안 돼라는 말을 하기 싫은 내 고집이 만든 또 다른 "안 돼"다. 그러니까 특히 나의 딸처럼 활동적인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공감을 할 거다. 나보다 한참 짧은 다리를 가졌는데 어째서 움직임은 홍길동보다 빠른 것인가. 이러한 의문이 들기도 전에 목에서부터 나오는 그 말, "기다려!"
물론 그 기다림의 말은 한 번에 먹히지 않는다. 성가신 알람시계처럼 무한반복을 해야 한다. 습관이 되면 괜찮다.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정말 기다려야 할 순간에는 완전히 달라진 부모의 어조와 뉘앙스를 읽는다. 아이들은 그럴 때 또 금세 멈춘다.
"미안하다."는 말은 육아서적에서 부모님들에게 권장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나는 자주 쓴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아이에게 미안한 짓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과자를 너무 힘주어 따서 다 쏟아 버린다던지 딴 데 정신이 팔려 팔꿈치로 아이의 머리를 친다던지, 아이의 부탁을 까먹고 태연하게 하품을 한다던지. 물론 살다 보면 서로 정신이 없어 일어날 수 있는 일, 인지상정을 배우기 전에 미안하다는 단어를 먼저 배워서 되겠냐지만 나는 그래도 내 아이가 "야,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보다는 "미안하다."라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주 아이에게 하는 말은 "실수해도 괜찮아."이다. 내 딸은 하루에 최소 30장의 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할 정도로 본격적이진 않지만 검정 모나미 볼펜으로 아이가 만들어 내는 세상은 입이 떡 벌어지게 창의롭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진일보한 움직임을 그리기 위해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숨을 죽이게 된다. 아쉽게도 아직 펜의 움직임을 온전히 제어할 수 없는 만 58개월의 아이임으로 그러한 시도들이 매번 보람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면 아이는 혼자서 씩씩거리다 훌쩍이는데 그러면 나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은 채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한다. "실수해도 괜찮아. 실수해야 잘할 수 있어." 가끔 감정이 벅차오른 아이는 펜을 바닥에 던지고 내 품에 와락 안긴다. "나는 아직 어려서 손이 조그매서 그래. 나는 왜 아직 아이인 거야." 자신을 원망하고 싶어 기어이 찾아낸 단점들은 안타깝다기보다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아니야. 어른들도 실수해.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실수가 필요해." 내가 이렇게 대꾸하면 아이는 의심의 눈초리가 된다. 정말 어른들도 실수를 하냐는 대답이 돌아오면 나는 누구보다 분명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른들도 여전히 실수를 한다. 실수를 거듭해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 버리는 무책임한 어른들도 많다. 성공만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되레 작은 실패를 두려워하며 도전을 멈추기도 한다. 남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조건을 다 갖추고도 자신이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도대체 왜? 어쩌면 그들은 실패를 한다는 사실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찰나의 초라함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마음의 근육이 허약한 것이다. 이건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정말 가르쳐 준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 있다. 그러니 자기 마음을 돌보자는 내용의 책들이 들불처럼 유행을 일으킨 것일 수 있다. 지나고 나니 아는 거다. 잘하려고만 하는 노력이 어느 날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걸. 그걸 부르는 전문용어도 생기지 않았는가. 번 아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아이에게 실수를 용인하고 스스로 고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작은 실패를 맛보고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임을 알게끔 한다. 나는 가끔 어른들의 그런 말이 웃긴다. "남들은 아무도 너한테 관심 없다."라는 말로 아이의 개성을 죽이고 "남들 보는 눈이 있지."라는 말로 아이를 채찍질하는 것이.
실패를 알기 위해서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한' 누군가의 책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제 조금 철 지난 유행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실패 없이 성공가도만 달리는 것이 하나의 특권이 된 시대다. 그에 따른 방법들은 안 걸리면 제일 좋고 걸리면 오리발. 실패와 도덕성이 이토록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는 것을 보면 가끔 현기증이 난다.
나도 내 아이가 망하거나 뒤쳐지면 속이 상할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남들보다 잘하고 남들보다 빠르게 하자라는 재촉을 신념으로 삼기보다는, 실패의 맷집을 단단히 키워 넘어져도 재빠르게 일어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내가 실패를 거듭하며 내 삶의 방향키를 조금 더 나은 쪽으로 돌린 경험이 있어 그럴 것이다. 풍요와 야망을 심어주는 쿨한 부모는 되지 못하지만,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나의 마음이 아이의 상처를 제대로 회복시키는 자양분이 되길 바란다. 나 또한 아이의 작은 실패들을 바라보며, 내 아이의 생에 기다리고 있을 무수한 시련과 좌절들에 불안함을 달랜다. 부디 지금을 기억해주길, 타인의 실패를 조소하는 대신 손뼉 치고 응원하는 좋은 어른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