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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땀이 난다

내가 엄마라니.......

by 존치즈버거
2015.3.19

매일 좋은 엄마가 되려는 노력만 있을 뿐 나는 여전히 서툴다.
내가 쏟은 오늘의 노력이 아침이 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에만 실패가 없다. 그러니까 매일 빠른 속도로 꿈과 희망과 절망과 좌절을 반복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면 어쨌거나 성공이지 않나, 낙관할 뿐이다. 뭐 어쨌든 즐겁다. 게다가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더 힘(?)이 난다. 엄마가 돼도 심술궂은 건 어디 안 간다. 다행이다.


아이가 3개월, 그러니까 갓 백일이 되었을 때쯤 남긴 메모를 보았다. 아이는 이제 훌쩍 커서 혼자 동화책도 완독 할 수 있는 유치원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원체 땀을 많이 흘리는 나는, 긴장을 하거나 당황을 하면 몸의 온도가 확 떨어지고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식은땀이 콸콸 쏟아진다.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던 첫날부터 나는 식은땀을 내내 흘렸다. 젖을 제대로 물리지 못해서, 아이가 갑자기 변을 보아서,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모유수유하는 걸 깜빡 잊고 김치를 먹어버려서 등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남동생과 열 살이 넘게 차이가 나서 어릴 적 내가 항상 돌보았던 기억이 있는지라 당연히 내 아이도 잘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엄마와 누나는 엄연히 다른 영역에 존재했다. 어떤 엄마들은 우는 아이를 붙잡고 같이 울었다거나 아이가 잠에 들자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울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대신 계속 식은땀을 흘렸다. 백일이 넘어가고 양육에 익숙해지자 그때는 몸이 힘들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때 문득 기독교에서 원죄를 이야기할 때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샘솟는 모유처럼 끊임없이 생성되는 죄책감들. 죄를 짓기는커녕, 매일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하루가 끝나면 언제나 반성하는 자세로 번민에 휩싸이곤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제 아렴풋하게 내 머릿속을 떠돈다.


지금 저 과거의 메모를 보자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나는 무엇에 실패했다고 느낀 걸까? 실패를 말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이나 결과물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나의 목표는 무엇이었고 그 결과물이 어떠했기에 저런 소리를 했단 말인가. 단순히 아이가 생각보다 많이 보채서? 아니면 육아서적에 등장하는 연령별 발달보다 더디다고 느껴서? 어제 잠들기 전 나는 내가 느낀 실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낸 결론은 결국 저 실패와 나의 아이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는 잘 자랐다. 저렇게 실패하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아이는 잘 먹고 별다른 사고도 없었고 큰 병을 앓지도 않았다. 실패한 것은 그저 나의 마음일 뿐이었다. 양육 과정에서 느끼는 피곤함과 짜증과 이런저런 복합적인 감정을 나는 그저 뭉뚱그려 '실패'라고 표현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정확한 발음으로 "엄마, 도와주지 않아도 돼.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나의 아이는, 또한 분명한 발음으로 내게 사랑을 말한다. 그 사랑의 말들은 내 생을 통틀어 제일 갑작스럽고 생소한 표현들이며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찬사들이다. 나는 이제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실패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감하지도 않는다. 마음을 어지럽히던 번민들도 사라졌다. 그저 매일매일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할 뿐이고 아이가 내게 건네는 사랑의 말들 속에서 내가 아이와 보낸 노력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아이가 나를 이만큼 자라게 했다. 이 말만큼은 시간이 흘러도 번복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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